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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중학생 아들을 프로 축구에 입문시키라는 제의를 받았다면? 대한민국의 아버지라면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학력, 학벌의 위력을 절감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무리 축구에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장 없이 과연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것은 아버지의 현실적인 고민이다. 큰 결심이 필요한 사안이다. 신정아(35)씨 사건을 떠올려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선 위조라도 하고 싶었던 게 학력이었다.
고심 끝에 상급학교 진학 대신 프로 축구로 아들의 진로를 정했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만난 이들은 이런 고민과 결단의 과정을 거쳐 일찌감치 프로에 간 아들들이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케이스다. FC 서울 이청용(19)의 아버지 이장근(48)씨와 김동석(20)의 아버지 김진복(54)씨였다.
이청용은 지난 2003년 도봉중 3학년을 중퇴하고 FC 서울에 입단했고, 김동석은 그보다 1년 전인 2002년 용강중을 중퇴하고 프로의 길로 나섰다. 그 나이 때 선수로서는 성공한 경우다. 둘 다 2007 캐나다 세계청소년(20세 이하)선수권대회 대표로 활약했고, 이청용은 올림픽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김동석 또한 박성화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대표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는 재목이다. 팀에서도 이청용은 확고한 주전으로, 김동석 또한 붙박이는 아니더라도 짭짤한 ‘조커’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19세와 20세에 프로 1군에서, 이 정도 위치를 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역시 중학교 졸업장도 갖지 못한 아들의 학력에 근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혹시 있을지 모를 부상을 우려했다.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가 됐지만 아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는 여느 아버지들과 다름없었다.
“우리가 사교육에 열중하는 보통 부모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듯 일반 부모들이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이장근씨의 말처럼 그들만의 애환과 꿈도 있었다. 그들은 또 혹시나 말을 잘못해 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고, 자신들이 드러나는 것을 꺼렸다.
▲4개월을 고민했다
이장근 씨는 이청용의 프로 행을 두고 4개월 가까이 고민했다. 역시 배움이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탓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축구에 뜻을 둔 바에야 빨리 좋은 환경에서 좋은 기술을 익히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처음 프로 진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그때 청용이가 15세였다. 프로에 가면 나이 많은 형들도 있고. 부모로서 솔직히 겁도 났다. 더욱이 학업이나 학력을 포기하고 가야한다는 점이 부모로선 가장 걱정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응을 잘 할지,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등등 고민이 많았다. 선수나 부모 모두 힘든 부분들이다. 학교 지도자와 함께 4개월 가까이 고심했다. 그리고 어차피 축구 선수를 하기로 했다면 좋은 환경에서 좋은 기술을 배우면서 가는 길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판단했다.”
아들이 중도에 정규 교육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선수 생활을 마치면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배움이 짧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회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지 못해 앞으로 힘들지 않을까 고민이었다.
또 살다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생활도 좋은 추억인데 청용이에게는 그런 게 없다. 동창들도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끝나버렸으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처럼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나이에 프로에서 부른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면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자기는 만족하면서 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힘든 학원 축구를 하는 것보다 환경이 좋은 프로생활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힘든 학원 축구
힘든 학원 축구라고 했는데 이씨가 보고 겪은 학원 축구의 현실은 어떠했을까.
“우선은 성적이 가장 큰 부담이다. 선수나 지도자나 마찬가지다. 꼭 성적을 내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현실은 스트레스다. 선수 부모들도 자식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를 원하다 보니 감독들이 감당을 못한다. 우선 4강, 8강에 들어야 하고 출전 시간 몇 분 때문에 운명이 갈라지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성적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환경 면에서도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일단 운동도 맨땅에서 해야 하고, 모든 용품을 개인적으로 사서 써야 한다. 용품 가운데 고가품도 있는데 부모들이 다 사주기가 쉽지 않다. 시합도 많아 애들도 많이 힘들어 한다. 훈련도 많이 해야 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좋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돈이 없으면 아들에게 축구도 시키기 힘들 것 같았다.
“일부 지원을 많이 해주는 학교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대회에 출전할 때 들어가는 비용, 합숙비 등은 부모들이 갹출을 많이 한다. 중학교 축구팀들도 대부분 합숙한다. 거의 1년 내내 합숙하고 주말이나 대회가 끝난 뒤 휴가를 받으면 집에 와서 쉬는 정도다. ”
▲더 자유스러운 프로
이청용은 벌써 프로 4년차다. 아버지가 본 학원축구와 프로축구의 차이점은 뭐였을까.
“프로가 더 자유스러운 것 같다. 자기 관리를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단체 생활을 하고,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게 많다. 어딜 가더라도 단체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프로에서는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다보니 책임감도 생기고, 심리적으로 더 여유로워지는 게 있는 게 같다.
요즘은 학원 축구도 잘 가르치지만 프로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프로에 와서는 하루 2~3시간 정도 훈련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가지 패턴을 집중적으로 익힌다던가, 훈련의 강약을 잘 조절하는 점 등이 다른 것 같더라. 코칭스태프도 학원 축구의 경우 감독 코치 트레이너 등이 30~40명의 선수를 가르치지만 프로에서는 일대일로 지도를 받을 수 있고, 신체적 기술적으로 빨리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씨는 아직 이청용이 택한 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또 다른 것을 배우는 것 같다고 했다.
“프로에 일찍 잘 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기가 좋아서 축구를 한다. 학업과는 다른 면도 배우는 것 같더라. 또래들보다 먼저 사회에 나서서인지 기능적인 지능보다 사회적인 지능을 빨리 터득하는 것 같다. 남들과 대화할 때도 오히려 예의를 잘 갖추는 것 같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할일도 잘 알고, 사회인으로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것 같다. 나이 많은 형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구단에서도 정기적으로 영어 한문 컴퓨터 교육 등을 해줬다.”
▲그래도 걱정은 끝이 없다.
부모들의 걱정은 자식이 학업을 포기하는데 따른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프로 선수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걱정은 따로 있다.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학원 축구에서는 단체 생활을 하다보니 시합에 나갔을 때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주면 됐다. 프로에서는 팀 성적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적도 중요하지 않은가. 프로에 온 뒤에는 빨리 1군에 가야 하는데, 여기서 처지면 1군에도 못 들어가 보고 도태 되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있었다. 3년 정도 지났을 때는 위기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본인도 그런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프로 무대를 밟았으니까 어떻든 성공했다지만 거기서도 운명이 갈라지지 않는가.”
부모로서 안고 있는 가장 큰 우려는 부상이다.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게 꿈이듯 프로축구 선수로 뜻을 세웠으면 해외 빅리그로 진출하는 게 선수는 물론 부모의 꿈이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상은 한 순간에 이들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바라는 것은 몸 관리를 잘해서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해외 진출은 선수나 부모 모두의 꿈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과격하게 하기보다 즐기면서 축구를 했으면 한다. 좋은 선수가 된 뒤에는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면 좋은 곳에서 불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컸다. 열심히 뛰어서 소속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도 노려보고, 그리고 선수 생활을 잘 마감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을 피하는 것이다.”
▲설사 잘못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지만 이씨는 스스로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다. 더 크지 못하고 평범한 선수가 됐을 때 청용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있다. 청용이가 아는 게 축구고 좋아하는 것도 축구다. 만에 하나 잘 안되더라도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청용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마음을 축구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걱정을 한다. ‘요즘 사회가 대학교는 나와야 이력서라도 넣을 수 있는데’ , 또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사회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겠느냐‘ 는 등의 말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평생을 취미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학력이 그렇게 중요치 않다고 본다. 축구 공부도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뒤떨어진다고 생각진 않는다.
청용이는 4,5살때부터 축구 선수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지금까지 ‘힘들다 그만 두겠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못들어 봤다. 스스로 힘든 게 있는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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