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업고 흥행에 성공한 두 작품의 비결은 이른바 ‘온고지신’이다. 먼저 원작 자체의 뛰어난 작품성과 명성으로 그때의 향수를 간직한 30~40대 이상 관객들을 극장에 불러들였다(온고). 아울러 그 시절보다 훨씬 진일보한 기술력과 완성도로 체험에 목마른 10~20대 관객들의 취향까지 저격했다(지신)는 점이다.
‘슬램덩크’·‘타이타닉’, 원작 세대→MZ까지 저격
14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슬램덩크’는 전날 전국에서 4만 4124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다. 누적 관객 수는 290만 1090명, 이번 주 중 30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난달 4일 국내 개봉한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은 도전을 그린 영화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된 만화 ‘슬램덩크’가 원작이다. 우리나라에선 90년대 초중반 만화책으로 출간돼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개봉 당시인 1월 초만 해도 이 영화는 일부 원작 팬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해 조용히 입소문을 탈 의외의 복병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 설 연휴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하더니, 2월로 넘어오면서 ‘아바타: 물의 길’, ‘교섭’ 등 대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개봉 한 달이 넘은 현재 1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 중이다. 개봉 초반 이 작품의 흥행을 견인한 것은 원작 만화의 기억을 간직한 3040 남성 관객들이었다. 영화로 탄생한 게 무려 26년 만인데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각본과 연출까지 맡아 화제를 모은 덕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원작자가 만든 작품이라는 신뢰감에 더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1020 관객들까지 유입했다”고 설명했다.
박스오피스 2위는 25년 만에 재개봉한 ‘타이타닉: 25주년’이다. 지난 8일 개봉한 ‘타이타닉: 25주년’은 ‘아바타2’로 천만 관객을 끌어모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작품 ‘타이타닉’(1998)을 4K 3D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한 작품이다. ‘타이타닉’은 세계 최고의 유람선 타이타닉 호에서 피어난 잭과 로즈의 운명적 사랑과 예상치 못한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개봉 당시 신드롬적 인기를 끌었고, ‘아바타’(2009),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 이어 현재 전 세계 역대 흥행 영화 3위를 기록 중이다.
개봉 첫날 4만 1758명을 동원, 국내에서 재개봉한 작품 중 기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보유했던 ‘라이온킹 3D’를 제쳤다. 개봉 후 5일간 박스오피스 2위를 유지 중이며 누적 관객 수 67만 8410명을 끌어모았다.
레트로에 기술력 얹어…영화적 체험 극대화
극장가의 레트로 현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 톰 크루즈가 80년대에 주연을 맡은 영화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이 무려 36년 만에 개봉해 특수관을 중심으로 N차 관람 현상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당시 누적관객수 817만 명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이 작품들이 단순히 ‘추억’을 자극하고, 레트로를 향한 젊은이들의 관심만 공략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영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송태섭 역을 맡은 엄상현 성우는 “‘슬램덩크’가 10년 전에 개봉했으면 이 정도로 인기를 끌진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영화를 보며 애니메이션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했다”며 “실제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 발달한 기술, 완성도 덕분에 원작의 감동이 배가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타이타닉: 25주년’도 원작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4K 3D 기술로 다듬어 그 시절보다 훨씬 선명한 화질을 구현해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평이다. 한 국내 영화 제작사 대표는 “원작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20년이 넘은 영화를 어떻게 현대 기술로 구현할지 궁금했는데 아이맥스에서 이 작품을 관람한 뒤 충격을 받았다”며 “현대 기술의 압도적 화질과 사운드로 관람하니 원작의 가치가 더 올라간 느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