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프로레슬러 조경호(35)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자존심이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시절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빌 골드버그 경기를 보고 프로레슬링 세계에 푹 빠졌다. 결국 2003년 17살 때 이왕표 체육관에 방문해 격기도를 배우면서 프로레슬러는 인생의 중요한 꿈이 됐다.
2009년 군 제대 후 2010년 무작정 호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에 뛰어든 조경호는 호주,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다양한 경기와 훈련을 소화했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려운 시기를 겪는 한국 프로레슬링을 지키는 에이스이자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1960~70년대 ‘박치기왕’ 김일, ‘비호’ 장영철, ‘당수촙’ 천규덕 등을 앞세워 최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국민에게 큰 희망을 선물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프로스포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프로레슬링은 깊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1980~90년대는 ‘프로레슬링 대부’ 이왕표가 꾸준히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명맥을 이었다. 조경호도 이왕표를 통해 프로레슬링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한국 프로레슬링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미국,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프로레슬링의 인기와 관심이 높아지는데 반해 한국에선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는 문화로 전락했다.
조경호는 프로레슬링 선수 생활을 통해 부와 명예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워낙 격렬한 운동이다보니 온몸에 부상을 달고 살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한국 프로레슬링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때문이다.
사실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20대 때는 열정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는 현실적인 부분과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조경호는 “내가 선택한 길에 고민했을 때도 있고 사회 생활하는 친구들과 비교할 때 허탈감을 느낀 적도 있다”면서 “다른 일을 해볼까 시도한 적도 있는데 결국 레슬링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 털어놓았다. 더불어 “레슬링을 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이왕 시작한 것 죽을 때까지 계속 해보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조경호의 목표는 한국 프로레슬링 시장을 최소한이라도 살려놓는 것이다. 어느 정도라도 기반을 다져놓은 뒤 후배들이 그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조경호는 프로레슬링을 알리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현재 IB스포츠에서 중계방송되는 WWE 프로레슬링의 해설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3일에 이어 4일에도 IB스포츠 채널을 통해 국내에 생중계되는 WWE ‘레슬매니아 38’에 해설자로 출연한다.
레슬매니아는 전세계 프로레슬링 산업을 통틀어 최고의 이벤트다. 동시에 현역 선수인 조경호에게는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전세계 모든 프로레슬러들이 ‘한 번이라도 서봤으면 하는 무대’가 바로 레슬매니아다.
조경호는 “축구에 월드컵이 있고 미식축구에 슈퍼볼이 있다면 프로레슬링에는 레슬매니아가 있다”며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축제 같은 무대가 바로 레슬매니아다”고 설명했다.
조경호는 올해 열리는 레슬매니아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올해 레슬매니아38은 코로나19의 어려움을 딛고 역대 최고의 이벤트를 만들겠다는 WWE의 의지가 엿보인다”면서 “레슬링을 모르는 팬들이라도 가장 재미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경호는 IB스포츠를 통해 WWE와 레슬매니아를 즐길 시청자들에게 진심어린 메시지도 전했다.
“프로레슬링 진짜 정말 재밌습니다. 특히 프로레슬링에 대한 편견을 조금만 버리고 그 순간을 편안하게 즐긴다면 오히려 프로레슬링의 매력을 빠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