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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장서윤기자] "2년 전 '지. 아이. 조' '아이 컴 위드 더 레인' 등 해외진출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또다른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생각을 열어두고 많은 것에 너무 선입견이나 내 울타리를 갖지 말자고 생각했다.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은 일단 한숨 돌린 심정이다"(웃음)
이병헌이 돌아왔다. 2007년 '지.아이.조(G.I Joe, 감독 스티븐 소머즈) '아이 컴 위드 더 레인'(I come with the rain, 감독 트란 안 홍) 등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선언했던 그가 드디어 땀과 고민이 서린 결과물을 하나씩 들고 돌아와 선물꾸러미를 풀듯 대중 앞에 공개하고 있다.
그 중 오는 6일 한국 개봉을 시작으로 전세계 개봉하는 '지.아이.조'는 1억 7천만 달러의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로 단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품에서 이병헌은 주조연급의 비중있는 캐릭터와 전체 러닝타임(110분)의 2/3에 해당하는 분량에 등장, 첫 할리우드 작품치고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이전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영화 공개 전 걱정을 많이 했다. '욕만 안 먹으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며 운을 뗀 이병헌은 "언론 시사회 전 배급사에서 가족, 소속사 매니저들과 함께 보라고 따로 자리를 마련해줬었는데 그때도 속으로는 '혼자서만 봤으면' 했다"며 웃음지었다.
다행히 언론 시사를 거친 '지.아이.조'에서의 이병헌의 연기는 대체적으로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그는 "그때서야 한숨을 놓았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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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작 만화의 세계적인 인기에서 오는 부담감과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데 대한 의구심이 많았었다"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지.아이.조'는 1964년 액션 피규어로 첫 등장해 이후 155편의 만화와 95개 에피소드에 달하는 TV 시리즈·영화로 제작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다. 게다가 이병헌이 분한 스톰 쉐도우는 채닝 테이텀이 분한 듀크, 시에나 밀러가 연기한 배로니스, 스네이크 아이즈(레이 파크) 등과 함께 '지.아이.조'의 인기 캐릭터로 꼽힌다.
"미국인들에겐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만큼이나 대중적인 원작 만화인 데다 내가 맡은 스톰 쉐도우는 더더욱 만화적인 캐릭터로 유명하다. SF 블록버스터라는 장르 자체도 생소했지만 칼을 휘두르며 '나를 따라와' '공격하자' 등 한국말로 하라면 다소 낯뜨거울만한 대사를 하는 만화적인 인물을 과연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어느 쪽이든 선택하고 나면 되도록 후회하지 않는 그이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끝날 때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다. '내가 과연 잘한 선택일까'에 대해 자꾸만 자문하게 됐다는 것.
"동료배우인 시에나 밀러와 영화 촬영중 연기적 딜레마에 대해 자주 얘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 첫 블록버스터 도전이라는, 이전까지 지향해왔던 영화의 콘셉트나 연기적 세계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작품을 하는 데서 오는 고민이 비슷했다"
캐릭터에 대한 치열한 분석과 몰입을 요하는 연기보다는 블루 매트 앞에서 정해진 액션 동작과 직설적인 어투의 짧은 대사가 대부분인 연기를 하는 데 대해 '배우'로서 시에나 밀러와 이병헌은 비슷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배우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시에나에게 '너는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시에나는 "내 필모그래피에 이런 영화 하나쯤 있는 게 나쁘지 않으니까"라고 답하더라. 미국 시장에서 배우로 살아남는 데는 얼마나 큰 규모의 작품에 출연했는지가 중요 평가요소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아무리 많은 고민을 했다 해도 '지.아이.조'에 캐스팅된 것은 대단한 도움이 된다. 특히 서양인들이 전혀 모르는 나를 알리는 영화로는 더더욱 그렇고"
그런 지난한 고민을 안고 작업한 영화 '지.아이.조'는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새로운 흥분과 만족감을 심어주었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내가 엄청난 작품에 출연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연기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접고 촬영한 작품이었는데 연출을 통해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왔다. 물론 많은 돈이 들어간 영화인 건 알고 있었지만 후반 작업과 특수효과를 통해 연기할 때와는 또 달리 영화가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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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오랜만에 만난 소머즈 감독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겠다'며 두 감독이 나에 대해 물었다고 전해주더라. 듣자마자 속으로는 '아 그럼 당장 연결 좀 시켜줘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한국배우의 자존심이 있기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 그래요?"라고 대꾸했었다"(웃음)
블록버스터 영화를 새롭게 보게 되면서 국내 영화 현장과 비교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공장 폭파 장면을 찍는데 10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고 자동차 폭파 신에서는 자동차 십여대를 실제로 폭파시키는 등 할리우드 기술력의 현주소를 직접 보고 느낀 부분도 큰 경험이 됐다.
그러나 늘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반영하기도 하는 그의 특성상 '융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국 영화 현장의 분위기가 그립기도 했다.
"할리우드는 굉장히 자본주의에 입각한 곳이라 투자자와 제작자가 지니는 파워가 엄청나다. 때문에 배우와 감독이 어떤 아이디어를 논하더라도 그것이 실행가능한지 여부를 기다리는 데만도 무척 오래 걸린다. 또,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무척 길어서 이미 촬영장에는 준비돼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변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장에서 융통성이 많고 순발력을 요하는 한국 영화 환경과는 매우 달랐다"
어찌됐든 그는 2년 전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선택한 할리우드 진출작을 통해 이미 적지 않은 열매를 거뒀다. 소머즈 감독과 '지.아이.조' 2,3편에도 출연하기로 논의를 진행중인 것도 바로 그 실제적 성과다.
속편 촬영 스케줄이 내년쯤으로 예상되면서 그는 앞으로도 고단한 해외 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올해 한국 나이로 꼭 마흔이 된 그는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롭다는 생각도 자주 고개를 든다.
"결혼? 하고 싶다. 그런데 결혼은 자동차 면허증처럼 만기가 되면 일정 기간 안에 신고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나.(웃음) 이번 내한 때 채닝 테이텀이 와이프(배우 제나 드완)와 동행한 모습을 보니 무척 부러웠다. 나도 결혼을 해서 해외에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요원한 것 같다"
2년 전 해외 진출을 결심하면서 안주가 아닌 도전을 택한 이상 그는 개인적인 바람은 어느 정도 접어두었다. 그건 철저히 '시장의 논리'에 입각해 돌아가는 할리우드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는 냉정한 곳이다. '지.아이.조'를 두고 제작 관계자들이 '이병헌이 아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성공하면 그와 같은 배우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얘기한 내용의 기사를 봤다. 이 말은 내가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를 보일 수 있는지 철저히 가름해보겠다는, 어찌보면 정말 무서운 얘기다. 한국은 감독들이 의리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도 있지만 할리우드는 그와는 다름을 순간순간 느낀다"
곰곰 생각하던 그가 천천히 답변을 들려주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이 남녀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조차 불과 몇년 전까지 논란이 된 점을 미뤄볼 때 동양인으로서 넘어서기 힘든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사람들이 정말로 놀랄 만한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역할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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