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퍼거슨 감독 깜짝 용병에 웃다가 울어

  • 등록 2008-05-22 오전 8:11:28

    수정 2008-05-22 오전 8:28:49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2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첼시를 꺾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정상에 오른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 박지성은 우승의 감격을 만끽하는 맨유 선수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기뻐했지만 국내 팬들은 아쉬웠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박지성을 출전 선수 명단에서 아예 제외시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 까닭이었다. 경기 당일까지 영국 언론 등 대부분의 외신들이 그의 선발 출장을 예상했기 때문에 그의 결장 소식은 허탈하기까지 했다.

박지성으로선 '백전 노장의 승부사' 퍼거슨 감독의 깜짝 용병에 웃음을 되찾았다가 역시 허를 찌른 용병에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낸 셈이었다.

무릎 수술과 재활을 거쳐 이번 시즌 중반 그라운드에 복귀한 박지성은 지난 달 2일 AS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원정 경기(2-0승) 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당시 퍼거슨 감독은 라이언 긱스와 루이스 나니 대신 박지성을 선발로 투입했고, 박지성은 루니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으로 화답했다.

이 경기 이전까지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세 경기 연속 결장하는 등 팀 내 위상이 흔들리는 것으로 우려됐던 박지성이기에 그의 선발 출격은 영국 언론도 의외라고 분석했다. 당시 ‘가디언’지는 카를로스 테베스까지 벤치에 앉히고 박지성을 투입한 점을 주목하면서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후 박지성은 바르셀로나(스페인)와의 4강전까지 챔피언스리그에서 4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한 것을 비롯, 위건과의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도 선발로 출전하는 등 퍼거슨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퍼거슨 감독은 첼시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은 100% 프로페셔널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큰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혀 다시 그를 중요할 계획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 등 대부분의 외신들이 박지성의 선발 출격을 예상한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발표된 첼시전 출전 선수 명단에는 박지성이 없었다. 스타팅 멤버는 물론 대기 선수 명단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출전 선수 명단을 두고 AFP 통신은 “박지성이 스쿼드에서 제외된 것을 빼고는 놀랄 만 한 것이 없었다”고 전했고, 유럽의 축구 전문 사이트 ‘골 닷컴’도 “놀랍게도 박지성이 출전 선수 명단에서 빠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폭스 스포츠’는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박지성이 벤치에도 앉지 못하게 됐다”며 박지성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라고 밝혔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직전 가진 TV 인터뷰에서 "최근 하그리브스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다, 현재 몸상태도 최고다“면서 박지성 대신 하그리브스를 선택했음을 시사했다. 퍼거슨 감독은 하지만 ”박지성은 이번 시즌 팀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팀을 위해서 였다“며 스쿼드를 완성하기까지 겪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퍼거슨 감독으로선 수비력과 함께 결정적인 순간 프리킥으로 한방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하그리브스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퍼거슨 감독의 결단은 성공적이었다. 하그리브스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포진, 시종 활발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맨유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승부차기에서도 네 번째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키는 등 제 몫을 다해냈다.

박지성과 국내 팬들은 안타까웠지만 기어이 승리를 엮어내는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만큼은 세계적인 명장다웠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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