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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별도의 사진 촬영을 위해 도산 공원을 찾았다. 마침 결혼 사진을 찍으러 온 예비 신랑 신부가 그를 알아보고 기념 촬영을 하고 싶어 했다. 쾌히 응낙하고 사진을 찍는 그를 지켜보던 중년의 아저씨가 또 그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날쌘돌이’ 서정원(37)의 여전한 인기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서정원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해까지도 독일 월드컵 대표 발탁 가능성이 거론됐을만큼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해온 그로선 다소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2006~2007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리그 SV 리트에서 플레잉코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의 은퇴 선언 소식을 들은 오스트리아의 에이전트들이 “아직 원하는 팀이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며 의아해 했다. 은퇴 결정을 두고 ‘부상탓’ ‘체력 탓’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그건 아니라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근 그를 만나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와 앞날에 대한 구상, 그리고 꿈을 들어봤다.
▲아직도 마음은 그라운드에
지난 8일 그는 친정팀 수원 삼성의 홈 경기에 가 그를 아끼던 서포터 ‘그랑블루’와 고별인사를 나눴다. 22일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하프타임때는 공식 은퇴식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은퇴를 했는지 아직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직업병인지, 운동을 안 하면 불안하고 운동을 해야만 컨디션이 좋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지난 달 일본 J 2리그 사간 도스에서 뛰고 있는 윤정환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갔었는데 너무 뛰고 싶더라구요. 옆에 있던 와이프가 ‘또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은 거지’라고 하는데 가슴이 뜨끔하던데요”
▲공부를 더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은퇴를 결심했을까. 스스로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현역으로 더 뛰기에 충분한 체력과 기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많이 망설였습니다. 2005년 오스트리아로 갈 때 6개월만 더해야지 하고 떠났어요. 그런데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보니 벌써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하는데 더 늦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불안도 했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고민하는 것을 지켜 보던 와이프가 ‘이제는 그냥 마음 편하게 은퇴할 때가 됐다’고 하더군요. 혼자 고민하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공감했고, 좋을 때 옷을 벗는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제 그만하자’고 결심했죠. 나이도 그렇게 됐구요.”
▲서정원의 힘 ‘가족’
서정원은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상형을 ‘지금의 부인’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만큼 부인 윤효진(34)씨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각별하다.
서정원은 부인 윤효주씨도 프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프로축구 선수 부인으로서 오랫동안 내조를 하다보니 그 분야로 프로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운동 선수들의 일상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 기분이 나쁘면 하루 일이 잘 안 풀리듯 운동선수들은 부상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화가 나서 운동을 하다보면 자기 절제를 못해 퇴장도 당하게 되고 부상도 당하는 거죠. 이런 일들을 와이프가 잘 아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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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은 그러면서 솔직히 부인과는 거의 싸워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프랑스 교민의 눈물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역시 프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국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할때는 ‘서정원 세대’만 해도 요즘 세대와 참 많이 달랐음을 느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월드컵 한일전 등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 국민들을 활짝 웃게 해 줬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뛸 때 교민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저를 반기던 때입니다. 당시 한인회 초청으로 식사자리에 갔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같이 와서 고맙다며 저를 붙잡고 울더라구요.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프랑스 친구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코레(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몰라 ‘시나, 시나(중국)’라면서 놀렸답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와서 매일 울었는데 제가 스트라스부르에서 뛰면서 사정이 달라졌답니다.
▲유럽에 좀더 빨리 나갔었으면...
이런 보람도 컸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그는 “좀 더 빨리 해외에 진출해 더 오래 뛰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며 말끝을 흐렸다.
서정원은 91년 데트마르 크라머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분데스리가 팀들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명문 FC 바르셀로나 이적이 추진됐지만 군 문제로 모두 무산된 아픈 기억이 있다. 결국 27세이던 97년에야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진출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 본선에 뛰지 못한 것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아쉬움은 있었죠. 하지만 좀더 어렸으면 욕심을 내고 그랬겠지만 잘하는 후배 공격수들도 많았고 고참의 위치였으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스스로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하고 느꼈을 뿐입니다.”
▲가장 아까운 후배 고종수...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먼저 고종수를 떠올렸다. 너무 아까운 선수라는 것이다.
“2007 아시안컵을 보면서도 고종수가 생각나더라구요. 지난 해 독일 월드컵때도 그랬고. 중요한 시기에 그가 없었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렇지만 한국 축구에도 불행이었습니다. 종수가 가진 재능과 실력 때문입니다. 종수를 보면 본인도 잘해야 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도와줬어야 했거든요. 요즘도 종수가 싸이에 쪽지를 많이 보냅니다. ‘형님 예전이 좋았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그런 것을 더 절실히 느낍니다‘라고 하던데요. 종수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라더니 구세대다운 충고를 했다.
“후배들이 우리나라 축구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려줘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항상 선수들이 축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라운드에서는 좋은 경기로, 바깥에서는 바른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믿음과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신세대라 이전 세대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맡은 바 일을 충실히 다하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믿음직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그런 면에서 그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총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성실함이 배어있는 선수들입니다. 모두 축구만 잘하는게 아니라 인격도 됐습니다. 사람 됨됨이도 좋고. 그래서 더 귀여움을 받고 사랑도 받는 것 같습니다. 어린 후배들은 이들을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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