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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홀 승부가 아닌 단판 승부로 우승자를 가리는 연장전에선 강심장일수록 유리하다. 이다연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유독 큰 대회에 강한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다. 통산 7승 중 3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차지해 붙여진 수식어다.
24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에서 이다연의 강심장이 다시 빛났다.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를 쳐 호주교포 이민지, 태국의 패티 타와타나낏과 연장에 들어갔다.
이다연이 연장에서 상대해야 할 이민지와 타와타나낏은 객관적인 경기력에서 모두 한 수 위다.
이민지는 세계랭킹 7위로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가장 높다. LPGA 투어에서 통산 9승을 거뒀고 2주 전 크로거 퀸 시티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타와타나낏은 세계랭킹 78위로 이다연보다는 6계단 아래에 있지만, 2021년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 우승자다.
연장전에서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으나 이다연에겐 우승해야 한다는 간절함과 큰 경기에서 강한 대범함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정력에서 앞섰다.
18번홀(파4)에서 치러진 1차 연장에서 타와타나낏이 보기를 하면서 탈락했다.
이다연은 집중해 파 퍼트를 했으나 이마저도 홀을 벗어났다.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당연히 파 퍼트를 넣을 것으로 여겼던 이민지가 뼈아픈 실수를 했다. 파 퍼트를 놓치면서 이다연에게 천금의 기회가 다시 왔다.
경기 뒤 이다연은 “(파 퍼트를 놓치고) ‘또 2등으로 끝날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이민지 선수가 파 퍼트를 놓쳤을 때 나 역시 많이 놀랐다”고 당시 순간을 돌아봤다.
이다연은 세계랭킹 7위의 실수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차 연장에서 두 번째 친 공이 홀 뒤 약 7m 지점에 멈췄다. 경사도 있어 버디 성공 확률이 커 보이지 않았다. 이민지는 3m에 붙여 이다연을 압박했다.
이다연이 먼저 버디를 했다. 이민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놓쳤다. 75홀까지 이어진 긴 승부 끝에 이다연이 통산 8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다연은 3차 연장 버디 퍼트의 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그는 “결과를 예측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과 믿어야 할 것을 믿고 치자는 마음뿐이었다”라며 “이민지 선수가 더 가깝게 붙여놨고 안정적으로 치기보다는 확실하게 치자는 생각으로 친 게 버디가 됐다”고 말했다. 꼭 해내야 한다는 목표와 믿음 그리고 실행으로 옮긴 결정력이 우승의 주인공을 가린 승부수였다.
이다연은 “2019년에 3타 차에서 역전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그 뒤 이 대회에서 우승을 꼭 한 번 하고 싶었고 이렇게 연장까지 가면서 극적으로 우승해서 감정이 극대화 돼 눈물이 났다”며 “많은 사람들이 큰 경기에 강하다는 말을 하는 데 나 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자신감을 준다. 내 경기 스타일이 메이저나 큰 대회의 코스 세팅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다연은 이번이 생애 처음 치른 연장전이었다. 게다가 LPGA 투어 강자들과 치르는 연장전으로 부담이 더 컸을 수 있지만, 강심장으로 이겨냈다.
이다연은 “연장을 시작하면서 ‘못해도 2등이다’라는 마음이었고, 못해도 2등이니까 할 것만 하면서 자신 있게 하자는 마음이었다”라며 “첫 연장에서 이렇게 우승하게 돼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앞으로 또 연장전을 하면 우승을 할 수도 있고 2등도 할 수 있겠으나 이번 연장전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상금 2억7000만원을 받은 이다연은 시즌 상금 6억8508만6333원으로 늘려 상금랭킹 3위로 올라섰다. 올해 두 번의 우승으로 받은 상금만 5억400원이다.
이다연은 지난해 왼쪽 팔꿈치와 팔목 인대 파열로 일찍 시즌을 마감했다. 회복을 위해 긴 시간 공백을 가졌으나 올해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다연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대회가 남아 있다. 메이저 대회도 하나 남아 있으니 하이트진로 챔피언십까지 준비를 잘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당연히 선수라면 개인 타이틀도 얻고 싶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으나 도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남은 시즌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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