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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8시 33분.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최경주(48)가 반소매 차림을 하고 경남 김해시 정산컨트리클럽 1번홀(파5)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14kg이나 빠졌다는 체중 탓인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24일 최경주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최하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의 개막을 하루 앞두고 후배 홍순상(37), 국가대표 박상하(18) 그리고 미국프로골프(PGA) 웹닷컴 투어에서 활약 중인 재미교포 박진(38)과 함께 연습라운드에 나섰다.
후배들과 함께 한 연습에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최경주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후배들이 좋은 샷을 하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코스를 돌았다.
12번 홀에서는 전매특허인 예리한 벙커샷을 선보였다. 최경주는 PGA 투어에서도 벙커샷을 잘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한때는 하루 1000번이 넘는 벙커샷 연습을 했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여 익힌 기술이다.
최경주가 몸을 추스르고 다시 필드에 섰다. 단단하고 거침없어 보였던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검은 피부에 90kg에 달하던 당당한 체격은 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수술 이후 체중이 무려 14kg이나 빠졌을 정도로 야위었다. 하마터면 선수 생활을 중단할 수도 있었던 위기를 넘기고 돌아온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웃었다.
이날 최경주가 날린 힘찬 티샷은 잠시 멈춰 있던 ‘탱크’의 우렁찬 시동이었다. PGA 투어는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주최하는 대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999년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하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진출에 성공한 최경주는 남자골퍼들에겐 우상이자 개척자였다. 이후 배상문(32), 강성훈(31), 노승열(27), 김민휘(26), 김시우(23) 등 많은 후배들이 그를 따라 PGA 투어 진출에 속도를 냈다. 최경주는 “기회가 있을 때 와라. 도전하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서른 살에 PGA 투어에 왔다”며 투지와 열정을 강조했다. 최경주의 말 한마디는 후배들에게 그 어떤 조언보다 감동을 줬다.
수술 탓에 지난 4개월 동안 골프채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다는 최경주는 3주 전부터 조금씩 샷 연습을 시작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다시 시작하면서 몸을 만들며 후배들과의 대결을 준비했다.
가볍게 9홀 연습라운드를 마친 최경주는 “체중이 14kg이나 빠졌는데 거리는 줄지 않은 것 같다”면서 “지난 5월 허리 통증이 있었는데 체감상 그때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것 같다. 9홀을 돌았는데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며 만족해 했다. 하지만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성적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좋은 대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는 선수들을 위한 대회다”며 “선수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끔찍하게 챙기기로 유명한 최경주가 25일부터 개막하는 대회에서 또 한 번 후배 사랑을 실천했다. 25년 동안 필드를 누빈 그는 누구보다 무명의 설움과 배고픈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이번 대회에 잘 녹아 있다. 올해부터는 예선에 떨어진 선수들에게도 일정 금액의 상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 전원에게도 350만원씩의 최소 상금을 준다. 후배들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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