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한국 축구는 ‘아시아 맹주’를 확인하며 세계 축구를 향해 뻗어 나갔다. 브라질에서 또 한 번의 신화를 쓰기 위한 위대한 도전을 이어간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월드컵 무대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것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제5회 스위스대회였다.
당시 “일본인을 한국 땅에 들일 수는 없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최종예선 1, 2차전을 모두 도쿄에서 치렀다. 한국은 1, 2차전에서 일본에 각각 5-1 승리, 2-2 무승부를 기록해 종합전적 1승1무로 처음으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그러나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한국은 당시 얇은 주머니와 어두운 국제정세 탓에 본선 준비가 제대로 됐을 리 만무했다.
본선 2조에 속한 한국은 대회 개막 직전에야 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컨디션을 조절할 겨를도 없이 당대 최고의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가 버틴 헝가리에 0-9 참패를 당했고, 이어진 터키전에서도 0-7로 패했다.
최하위 팀은 자동탈락하던 당시 규정 때문에 같은 조의 서독(현 독일)과는 마지막 경기도 치러보지 못한 채 짐을 쌌다.
이후 한국은 1956년과 1960년 아시안컵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맹주’로 자리 잡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스위스대회 이후 32년 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다.
1960년대에는 국제경험 부족과 정치논리, 1970년대에는 호주와의 질긴 악연이 발목을 잡았다. 부진은 이어져 한국은 1982년 스페인대회를 앞두고 중동의 쿠웨이트에 0-2로 완패,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4강 신화’를 쓰며 새로운 가능성을 알렸다. 그해 프로축구가 출범했고 한국축구는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대회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허정무 현 축구협회 부회장의 결승골에 힘입어 스위스대회 이후 32년 만에 숙원이던 본선행을 일궈냈다.
한국은 본선 조별 라운드 첫 경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 1-3으로 패했지만 박창선의 골로 월드컵 무대 첫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2차전에서 불가리아와 1-1로 비긴 한국은 의욕을 불태웠지만, 3차전에서 이탈리아와 접전 끝에 2-3으로 석패, 2차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자신감을 얻은 이회택 감독의 한국은 1990년 이탈리아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3승2무의 준수한 성적으로 2회 연속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본선에서 벨기에(0-2), 스페인(1-3), 우루과이(0-1)에 모두 패해 고개를 숙였다. 당시 전패 기록은 역대 월드컵 본선 최악의 성적표였다.
한국은 1994년 미국대회 최종예선에서 일본이 최종전에서 이라크와 2-2로 비기는 이른바 ‘도하의 기적’에 힘입어 본선에 올랐다.
김호 감독이 이끈 한국은 본선 1차전에서 홍명보, 서정원의 극적인 연속골로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거두며 사상 첫 16강행의 꿈을 부풀렸지만, 볼리비아와 득점없이 비기며 계획이 틀어졌고,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했으나 2-3으로 석패해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1998프랑스대회의 경우, 차범근 감독의 지휘 아래 가볍게 아시아 무대를 통과한 한국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하석주가 본선 첫 선제골을 얻었지만, 후반전에만 내리 세 골을 내주며 역전패했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5로 패했고, 차 감독이 경기 후 현지에서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벨기에와의 3차전은 1-1 무승부였다.
4년 뒤 일본과 공동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진출한 한국은 전 대회에서 대패의 아픔을 안겼던 적장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다. 결과는 월드컵 첫 승(폴란드전 2-0) 및 첫 무패(미국 1-1무, 포르투갈 1-0승)와 16강 토너먼트 및 4강 진출(이탈리아 2-1승, 스페인 0-0<승부차기 5-3승> 독일 0-1패)의 신화였다.
한층 높아진 위상 속에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예선에 나선 한국은 우여곡절 끝에 본선에 올라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한 조가 됐다. 월드컵 본선 역사상 최상의 조 편성이라는 평가였다.
한국은 토고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본선 원정 첫 승을 기록했고, 프랑스와 1-1로 비기며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지만, 스위스와의 최종전에서 0-2로 완패하며 4강 신화 재현에는 실패했다.
그리스에 2-0 완승을 거둔 한국은 강호 아르헨티나에 1-4로 졌지만 복병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기록,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와의 16강에서 에이스 루이스 수아레즈에게 2골을 내준 끝에 1-2로 져 고개를 떨궜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011년 11월 레바논과의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배의 책임으로 조광래 감독이 옷을 벗었다. 이후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지만 본선 진출까지의 ‘시한부 감독’을 선언했다.
쿠웨이트를 2-0으로 꺾고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진출한 최강희호의 출발은 좋았다. 카타르(4-1 승), 레바논(3-0 승)을 차례로 격파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전을 시작으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본선 진출을 낙관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우즈벡 원정에서 무기력한 플레이 끝에 간신히 2-2 무승부를 거둔 한국은 이란 원정에서 0-1로 무릎을 꿇었다. 카타르를 홈으로 불러들여선 손흥민의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에 힘입어 간신히 2-1 승리를 따냈다.
지난 11일 우즈벡과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한국은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최소한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본선에 오를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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