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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로 불리는 게 싫지 않았나 ▲ 솔직히 당시에는 매우 싫었다. 영어로 `태지 보이즈`(taiji Boys)였는데 직역하다 보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됐다. 그러나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분명 서태지가 중심이 돼 음악을 만들었고 우리가 후반부에 뭉쳤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큰 의미는 없다.
-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이 밤이 깊어가지만`과 `널 지우려를 해`를 작사했다. 아티스트로서 저평가된 경향이 있다 ▲ 마침 서태지의 곡에 가사가 없어 내가 써 보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하룻밤 만에 가사를 썼다.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나 자신에 놀랐던 시기다. 아티스트로서 조명받지 못한 데 대해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서태지의 음악성이 엄청 뛰어났다.
- `춤꾼`으로만 비치는 게 아쉬울 법도 한데 ▲ 가수로서의 욕심보다 춤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다만 내가 어릴 적 춤출 때만 해도 사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기다. 춤을 추면 `날라리`라는 이미지가 강해 주변 눈치를 봐야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즐거웠을 뿐 아티스트로서 대우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즐겼다.
- 서태지는 록, 양현석은 힙합, 이주노는 브레이크 댄스로 대표된다.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차는 없었나 ▲ 물론 굉장히 컸다.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오히려 부딪치는 건 없었다. 내가 아티스트인 척 노력했다던가 이주노 씨가 그랬다면 싸웠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서로 도움이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는 동안 태지와 갈등이 없었던 것은 각자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음악을 담당했다면, 나는 일종의 기획자나 프로듀서의 역할을 했다.
- 지금도 팬들 사이에선 `이주노와 양현석은 원래 안 친했다`는 말이 있다 ▲ 이주노 씨와 내가 친하지 않았다기보다 서태지와 내가 더 친했다는 설명이 적절할 것 같다. 이주노 씨는 서태지를 만나기 전 춤추던 시절에 이미 알던 사이다. 너무 잘 알기에 상대적으로 설렘이 적었을 뿐이다. 서태지와 이주노 씨와의 대화는 드물었다. 이주노 씨는 서태지와 나이 차가 많다 보니 직접적인 의사소통보다 나를 통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중간 역할을 많이 했다.
- 제작자의 눈으로 바라본 서태지와 아이들의 단점은 ▲ 고치고 싶은 게 없다. 각자 분야에서 최고가 모인 팀이었다. 20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결과물들을 지금 보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 열정적으로 살았구나 싶다.
- 서태지와 이주노가 부럽거나 그들에게 본받고 싶은 점은 ▲ 서태지의 음악성과 창조력은 정말 부럽다. 그에게 정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한다. 이주노 씨는 술을 많이 좋아했음에도 스케줄에 단 한 번도 늦게 온 적이 없다. 동생들에게 미안한 짓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항상 제일 먼저 나와 우리를 기다렸다. 멤버 모두 책임감이 강했다.
-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것에 비해 활동 기간이 짧았다. 은퇴 결정은 왜, 누가 한 것인가 ▲ 불화나 싸움에 의해 헤어졌다면 해체지만 우리는 그런 게 아닌 은퇴였다. 서태지가 가장 먼저 얘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주노 씨나 나도 반론하지 않았다. 그가 겪는 창작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해했다. 우리도 각자의 길을 준비해야 할 시점임을 알았다.
- 제2의 서태지로 꼽을 만한 혹은 버금가는 뮤지션이 있다면 ▲ 서태지와 아이들만큼 파급력이 큰 그룹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음악적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환경이 다르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방송사도 3개밖에 없었다. 지금은 가수들도 정말 많아졌다.
-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그룹을 만들 생각은 없나 ▲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K팝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큰 시장에서 활동하기 좋은 시절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제작자들도 다 만들고 싶을 거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시대가 원한 그룹이다. 요즘 시대가 원하는 그룹은 어떤 것일까 늘 고민한다.
- 제2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위해선 어떤 요건이 갖춰줘야 하나 ▲ 대부분 아이돌 그룹은 기획사에서 양산해 낸 이미지가 강하다. 소위 말해 차별성이 없다. 어느 그룹이 인기를 끌면 비슷한 그룹이 우루루 만들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있다.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빅뱅도 지금은 YG가 서포트를 해줘 빛을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서야 한다. 자기 옷을 스스로 입을 줄 아는 경쟁력을 갖춘 가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일명 `사생팬`은 없었나 ▲ 있긴 있었지만 당시 팬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정보력이 뛰어나지 않았다.(웃음) 집과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도를 넘어선 적이 없다. 팬들도 가수따라간다고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의식이 있어 좋았다. 쿨한 팬들이 많다.
- 누가 제일 잘 생겼다고 생각하나 ▲ 비주얼 담당은 서태지다. 남자한테 이런 얘기는 우습지만 서태지는 곱게 생겼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나는 장난 말로 `귀여움` 담당이었다. 이주노는 카리스마를 맡았다.
- 곧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자녀가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 나는 그 친구(자녀)가 뭘 하고 싶은지만 분명히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걸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가 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한 생각이다.
- 20년 전으로 돌아가 YG와 서태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 그건 진짜 대답 못하겠다.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아버지가 좋으냐 어머니가 좋으냐는 질문과 같다.
- 20주년 기념 음반 거액 제의도 받았다던데 ▲ 잘못 전달된 거다. 20주년이 아니고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제의를 받았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그런 제의가 없다. 하하. 안될 것 같은가보다.
- 팬들에게 한마디 ▲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나는 게 팬들이다.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한 적이 많았는데 우리의 생각과 이상을 같이 한 팬들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집 앞에 찾아오던 중학생 친구들이 지금은 나이가 들어 30, 40대가 됐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모두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라 믿는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일 거다. 항상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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