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 했다. 후반부터 차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앞으로 나가 쉼없이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면서 전술을 지시했다. 필요하면 손짓 발짓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를 감싸쥐거나 고개를 흔들 때가 더 많았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를 바라봐야 하는 선장의 안타까움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는 선수들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면서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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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의 고민
차 감독에게 광주전은 고민스러운 경기였다. 최근 2연패의 충격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베스트 멤버를 가동해야 하지만 오는 8일 열리는 FC 서울과의 정규리그 경기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번 대패의 수모를 되갚기 위해서는 베스트 멤버를 아껴둬야 했다.
3일 제출한 광주전 출전 선수 명단에는 일단 광주전 보다 서울전을 대비하겠다는 차 감독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진공청소기’ 김남일은 아예 명단에도 올리지 않았고 에두, 나드손 등 주전 골게터들을 대기 멤버로 돌렸다. 페이스를 조절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경기 직전 절충안이 나왔다. ‘원샷 원킬’로 유명한 나드손을 스타팅멤버로 투입, 안정환, 하태균 등과 스리톱을 이루게 했다. 차 감독도 광주전이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는 경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무너진 수비, 무디기만한 공격
수원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차 감독은 선수들이 심리적인 부담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데서 나온 실수라고 분석했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적시에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적절하게 역할을 나누는 협력 수비가 이뤄지지 못한데서 비롯된 실점이었다.
후반 4분 남궁도에게 허용한 추가실점 또한 셋피스 상황에서 상대 주전 골게터를 완전히 놓친 탓이었다.
차 감독이 자랑했던 공격진도 실망스러웠다. 아직 정상 컨디션에 올라서지 못했다고 하지만 안정환과 나드손은 무기력한 플레이 끝에 하프타임때 교체됐다. 단순히 골게터가 보강됐다고 팀의 골결정력이 높아지는게 아니다. 득점 찬스는 팀 플레이가 뒷받침되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날 수원은 그렇지 못했다. 최근 3경기서 수원은 3골을 넣고 9골을 내줬다. 공격과 수비 모두 큰 문제가 있는 셈이다.
차 감독의 허탈한 진단과 처방
결과론적이지만 차 감독의 이런 구상은 실패였다. 선수들이 페이스를 조절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떨어진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기는 게 더 필요했다. 특히 광주처럼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기던 상대에게 당하는 패배는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차 감독은 이런 위기는 시즌 중 항상 있기 마련이라며 5일부터 합숙훈련을 통해 분위기를 추스르고 서울전에는 포메이션 변경을 고려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했다.
여전히 잘 나가는 귀네슈
한편 귀네슈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은 경남을 1-0으로 제압, 컵대회 3연승으로 B조 1위를 지켰다. 울산 현대는 이천수의 활약에 힘입어 인천을 3-1로 완파했고 대구 FC는 제주 유나이티드를 2-1로 눌렀다.
전북 현대는 포항을 3-1, 부산은 대전을 1-0으로 각각 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