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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US 어댑티브오픈(장애인오픈) 골프대회 출전 각오를 묻자, 이승민(27·하나금융그룹)은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속사포같이 답을 뱉어냈다. 이승민은 8일(한국시간)부터 사흘간 미국 캔자스시티 뉴턴의 샌드 크리크 스테이션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US 어댑티브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을 노린다.
2년 전 시작된 제1회 US 어댑티브오픈에서 초대 챔피언에 오른 이승민은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프로 골퍼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임 변호사의 적응기를 그려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같은 시기에 방영돼, 이승민은 ‘골프계의 우영우’로 불리며 많은 감동을 줬다.
태어난 지 3년 만에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이승민은 지능지수(IQ)는 6~7세 수준이다. 어린 시절 그는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위축되기 일쑤였다. 타인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잡은 뒤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골프채로 공을 맞혀서 멀리 날릴 때, 하늘 높이 뜬 공이 날아가는 걸 바라볼 때 골프가 가장 재밌다”는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웠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 자격을 따냈다. 이승민은 “골프가 아니었으면 저는 아직도 동굴 속 외톨이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프로 7년 차에 접어든 이승민은 올 시즌 KPGA 투어 7개 대회에 출전해 한 차례 컷 통과를 이뤄냈다. 통산 37차례 출전한 프로 대회에서 5번 컷 통과를 기록할 정도로 실력이 한 뼘 성장했다.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서 5오버파 76타를 친 뒤에는 “올해로 6번째 출전했는데 스폰서 대회이다 보니 이번에는 컷을 꼭 통과해 보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경기 속도를 맞추는 게 저에게는 아직 어렵다. 5시간 동안 계속 집중하는 것도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승민은 KPGA 투어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즐겁다. 좋은 선배님들과 같이 경기하고 공식 연습 라운드를 함께 도는 것, 갤러리들의 박수와 ‘파이팅하라’는 응원을 받는 것, 프로 형들이 잘했다고 격려해 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그중 이승민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같은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는 박은신, 박배종이다. 이승민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조언해 주시고 잘해주신다. 박배종 프로님은 라운드도 자주 나가고 전지훈련도 같이 했다. 제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말을 잘 들어준다”고 밝히며 고마워했다.
이승민은 US 어댑티브오픈 우승 탈환을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장애인골프협회(EDGA)가 개최한 글리코 패러 골프 챔피언십, 그랑프리 장애인오픈 골프대회 등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US 어댑티브오픈에서 우승하면 이승민은 세계장애인골프랭킹(WR4GD) 1위에 오른다. 현재 이승민은 랭킹 2위(25.9300)로 1위인 킵 포퍼트(29.1063)과 3.1763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는다. 포퍼트는 지난해 US 어댑티브오픈에서 이승민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선수다.
이승민은 우승을 탈환하기 위해 겨울 전지훈련 동안 체력 훈련과 비거리 증가, 쇼트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승민에게는 또 다른 꿈도 생겼다. 2032년 호주 퀸즈랜드 패럴림픽에서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세계 최초 패럴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이승민은 “패럴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보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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