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눈물 흘린 '흙속 진주들', 한국 축구 희망으로 성장

  • 등록 2023-06-13 오전 6:00:00

    수정 2023-06-13 오전 6:00:00

11일(현지시간) 오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3·4위전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에서 이승원(8번)이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은 뒤 배준호(10번)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무관심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도전한 김은중호가 아름다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김은중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FIFA U-20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이스라엘에 1-3으로 패했다.

FIFA 주관 대회에서 공식 시상은 3위까지 이뤄진다. 4위를 차지한 한국은 작은 메달조차 받지 못한다. 비록 입상은 실패했지만 2019년 폴란드 대회(준우승)에 이어 두 대회 연속 4강 성적을 낸 것만으로도 김은중호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대표팀 출범 당시 김은중호를 향한 기대치는 바닥이었다. 2017년 대회 이승우(수원FC), 백승호(전북현대), 2019년 대회 이강인(마요르카) 같은 스타는 없었다. 골수 축구팬이 아니라면 선수 대부분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나마 유럽에서 활약 중인 김용학(포르티모넨스)과 대전하나시티즌에서 꾸준하게 출전하는 배준호 정도가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다.

김은중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관심을 양분 삼아 더 단단한 팀으로 발전했다.

무명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흙 속의 진주’로 다시 태어났다. 김은중호의 ‘캡틴’ 이승원(강원)이 대표적인 선수다. 이승원은 이번 대회 전까지 K리그1 경기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기대주로 우뚝 섰다.

이승원은 이번 대회에서 공격포인트 7개(3골 4도움)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선수가 FIFA 주관 단일 남자 대회에서 세운 최다 공격포인트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19년 폴란드 대회에서 이강인이 세운 6개(2골 4도움)였다. 한국의 준우승에 견인한 이강인은 대회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승원은 프랑스와 조별리그 첫 경기(2-1 승)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거의 매 경기 공격포인트를 끌어냈다. 0-0으로 끝난 감비아와 조별리그 최종전만 골이나 어시스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브론즈 슈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번 대회에서 3번째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로 인정받았다. 골든볼은 7골을 넣은 체사레 카사데이(이탈리아), 실버볼은 알란 마투로(우루과이)가 차지했다.

대표팀 주장을 맡아 조용한 리더십으로 대표팀 중심을 잡은 이승원은 “1년 6개월 동안 힘든 여정이었다. 4강까지 오는 과정에서 잘해준 선수들과 좋은 지도로 도와주신 코치진께 고맙다”며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이라는) 좋은 타이틀을 달게 된 만큼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 발견한 ‘흙 속의 진주’는 이승원만이 아니다. 190cm 장신 공격수 이영준(김천)은 프랑스, 에콰도르를 상대로 한 골씩 터뜨리며 차세대 대형 공격숫감으로 주목받았다. 프랑스전에서 높이를 활용한 헤딩슛을 성공한데 이어 에콰도르전에선 오른발 논스톱 슈팅을 작렬하는 등 뛰어난 득점 감각과 기술을 뽐냈다.

측면 포워드 배준호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키 180cm의 다부진 체격에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를 겸비한 배준호는 이탈리아와 준결승에서는 강한 인상을 심었다. 팀은 졌지만 이탈리아 선수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돌파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감독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배준호를 인상적인 선수로 지목했을 정도였다.

그 밖에도 키 178㎝로 장신이 아님에도 헤딩으로 두 골을 넣은 ‘골 넣는 수비수’ 최석현(단국대), 위기 순간마다 눈부신 선방을 펼쳤던 골키퍼 김준홍(김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브렌트퍼드 진출설이 나도는 센터백 김지수(성남) 등도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의 미래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꿈같았던 시간이 끝나면 냉혹한 현실이 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소속팀으로 돌아가면 다시 숨막히는 주전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전처럼 벤치를 오랫동안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들 ‘리틀 태극전사’들의 진짜 축구 인생은 이제부터다. 이번 U-20 월드컵 4강의 경험은 이들이 더 높이 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양분이 될 전망이다.

주전 수문장 김준홍은 “소속팀에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서 그런 경험이 특히 소중했다”며 “개인적으로 많이 발전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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