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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캡틴’ 김연경(33·상하이)이 2020 도쿄올림픽 터키와 8강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이기고 4강 진출 이룬 뒤 한 말이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8일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 0-3으로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고개를 떨구진 않았다. 팀 전체가 하나가 돼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배구뿐이 아니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1년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열리기는 했지만 도쿄올림픽은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가 열릴 때만큼은 정치, 사회적으로 각 진영에서 첨예한 대립을 겪던 대한민국을 원팀으로 엮어줬다. 코로나19 이전 월드컵, 올림픽 축구 경기 당시와 같은 거리 응원은 없었지만 국민들은 TV, 인터넷 등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며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원팀’으로 뭉친 많은 선수들은 열정을 쏟아부으며 국민들에게 희열을 안겼다. ‘원팀’은 각종 사안에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해온 대한민국에 스포츠가 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원팀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진짜 원팀이 된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런 점에서 ‘원팀 정신’의 표본이었다. 주장 김연경이 솔선수범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가장 많이 몸을 날렸고 공을 받아올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해보자, 후회하지 말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후배들은 그런 선배의 모습을 믿고 따랐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했고 놀라운 승리를 이끌어냈다.
앞서 여자배구 대표팀은 소집 후 3개월 넘게 외부와 격리된 채 훈련에만 집중했다.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경기장과 숙소만 오가는 고된 생활을 이어왔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올림픽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바라봤다. 옆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희생했다.
김연경은 “모든 선수가 매 경기 출전하고 있다는 것이 남다르다”며 “잠깐 들어오는 선수들도 언제든 뛸 거라 생각하면서 준비했고 그렇게 원팀에 됐다”고 강조했다. 누구 하나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힘을 모은 여자배구 대표팀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원팀 정신‘은 양궁과 펜싱에서도 빛을 발했다. 양궁 대표팀은 17세 고교생부터 40세 아저씨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이들은 공정한 대표 선발 과정을 통과한 진정한 실력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워낙 다양한 나이대 선수들이 모이다 보니 팀으로 뭉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올림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았다.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한 팀으로 똘똘 뭉쳤다. 혼성 단체전에선 남녀 대표팀 막내 김제덕(17)과 안산(20)이 성별을 초월하는 조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펜싱 대표팀 역시 ‘원팀’의 위대함을 확실히 보여줬다. 개인전에선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단체전에선 팀원들끼리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개인전 성과는 동메달 1개뿐이었지만 단체전은 출전한 3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일궈냈다. 뭉치면 더 강한 한국 스포츠의 저력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원팀의 위대함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선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여자배구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 직후 SNS를 “원팀의 힘으로 세계 강호들과 대등하게 맞섰고 매 경기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에 국민 모두 자부심을 느꼈다”고 격려했다.
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은 펜싱 남자 에페 금메달리스트 박상영(26·울산광역시청)이 끊임없이 되뇌였던 ‘할 수 있다’였다. 위기 순간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박상영의 투혼은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박상영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투혼을 불사르며 남자 에페 단체전 동메달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박상영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관통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과 국민들의 ‘원팀 정신’은 대한민국을 어떤 변화로 이끌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