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과 딥토크1] "재능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 등록 2010-05-03 오전 6:15:00

    수정 2010-05-03 오전 7:41:06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송지훈 기자)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본래 기획 취지는 조광래 경남FC 감독을 만나 '인간 조광래'의 향기를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로 명성을 떨쳤고, 감독으로 새출발 한 이후에는 '스타 조련사'로 주목받은 인물에 대해 담백한 '사람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진행 과정에 경남이 창단 이후 처음 K리그 1위에 오르는 경사가 겹치면서 본의 아니게 '축승(祝勝) 인터뷰'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때문에 수많은 '조광래 찬양' 류의 기사 중 하나로 비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어쨌든 좋다. 축구로도 사람으로도 조광래 감독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볼만한 인물이었으므로.

◇ 축구 늦둥이
조기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두 세 살 때부터 자녀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비칠 지 모르겠지만, 조광래 감독이 축구선수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다. 유행어를 빌어 표현하면, '축구 늦둥이'였던 셈이다.

"사실은 진주 봉래초등학교 다닐 때 볼을 찼어. 자랑같지만 경남 지역 또래 아이들 중에 내가 제일 낫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근데 그때 내가 공부도 좀 했거든. 진주에서 제일 좋은 중학교(진주중)로 시험을 쳐서 들어갔는데, 축구부가 없는 거야. 캄캄한 밤에도 혼자 연습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지만, 어떻게 하겠어. 아쉬움은 가슴에 묻어놓고 공부를 파고들었지."

간혹 방과 후에 다른 반 아이들과 볼을 차는 것으로 축구 갈증을 달래던 우등생 소년이 본격적으로 축구화 끈을 동여맨 건 진주고 2학년 진학을 앞둔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볼을 찬 선수들 중 진주고 축구부로 진학한 친구들이 "볼 잘 차는 아이가 한 명 있다"며 감독에게 조광래를 추천했고, 테스트를 거쳐 입단이 결정됐다. 축구를 사랑한 소년이 4년 간의 외도를 마치고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한 순간이었다.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경남FC)

◇3개월간의 '봉래산 특훈'
축구부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차고 맹활약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드라마와는 조금 달랐다. 수년 동안 공부에만 전념하던 학생에게 갑자기 시작한 축구부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재능만 가지고 이뤄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소질은 있었어. 초등학생 때도 동네 아저씨들이랑 같이 볼을 차곤 했는데, 체력은 모자랐어도 기술은 내가 제일 좋았거든. 솔직히 축구부 가입할 땐 기대도 컸고. 그런데 운동과 담 쌓고 지낸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어. 특히나 선수로 뛰기엔 체력이 너무 모자라더라고. 당연한 이야기지."

당시 '신입 축구부원 조광래'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간단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 체력을 기르는 것. 줄넘기를 하나 사서 매일 새벽 진주고 뒤에 솟은 비봉산에 올랐다.

"비봉산에 올라서 능선을 세 개 넘으면 모교인 봉래초등학교가 나와. 그땐 봉래국민학교지. 산 중턱에서 줄넘기도 하면서 그렇게 3개월을 죽기살기로 버텼어. 오전 5시에 일어났고, 비가 와도 쉬지 않았지.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체력이 올라오더라고. 다른 애들은 내가 새벽 운동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때쯤 비로소 아침 운동하겠다면서 슬슬 숙소에서 나오곤 했지."

'봉래산 특훈'의 효과는 놀라웠다. 타고난 소질에 준수한 체력이 뒷받침되자 '축구선수 조광래'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입단한 지 5개월 만에 주전으로 나설 수 있었고, 이내 진주고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후 '조광래의 진주고'는 전국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하며 학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연세대 진학 이후에도 1학년때부터 주전을 꿰찼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예도 맛봤다. 3개월의 특훈이 가져다 준 놀라운 변화는 이토록 컸다.

◇ 재능만으론 곤란하다
지난 발자취를 흐뭇한 표정으로 들려주던 조광래 감독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남모를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당시는 맨땅에서 경기를 할 땐데, 잔디 위에서 드리블 훈련을 하면 실력이 빨리 늘어날 것 같더라고.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다 잔디 위에서 볼을 차잖아. 그래서 밤에 몰래 학교를 찾아가서 아무도 없는 잔디밭 위에서 볼 다루는 훈련을 했지. 잔디가 많이 망가졌으니 걸렸다면 물론 정학감이었을 거야.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노력들이 선수로서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

위험과 고생을 무릅써가며 굳이 남들이 하지 않는 훈련 방법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광래 감독은 '재능만 믿어선 곤란하기 때문에'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내가 축구에 재능이 있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 워낙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남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힘든 상황을 끈질기게 버텼고,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건 그것 하나뿐이었던 것 같아. 우리 선수들한테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해. 재능만 가지고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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