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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요한은 뜨겁고 거친 숨을 삭히며 여자를 안았다. 그러나 요한의 눈빛은 공허했고 여자의 숨소리만 가빠졌다. 요한은 사람을 죽인 날 여자의 품을 찾았다. 그러나 요한의 심장 속에는 안을 수 없는 미호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속을 걷다'(이하 백야행)은 매우 극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여자주인공 미호(손예진 분)는 남자주인공 요한(고수 분)에게 살인을 교사하고 요한은 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부터 미호에 대한 마음이 깊었던 요한은 미호의 부탁을 듣고 15년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다.
고수는 '백야행'에서 남자주인공 요한 역을 맡았다. 지난 2004년 '썸'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된 셈이다. 그동안 고수는 드라마 '그린로즈'와 '백만장자의 결혼'에 출연했고 병역의무를 다했다. 연예계에서는 제대 후 고수가 바로 복귀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고수는 밀려드는 출연제의를 모두 마다했고 CF 역시 고사했다. 고수는 대학로 극단에 들어가 '연예인'이란 타이틀을 버리고 극단의 막내로 1년여를 살았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소속사는 애가 탔지만 "그때가 아니면 평생 연극무대에 설 수 없을 것 같아 1년만 기다려 달라고 간청"한 고수의 뜻을 따랐다.
“2003년 ‘피아노’ 이후 뭐랄까? 자신감이 들었고 약간 나태해지고 경거망동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 실력으로 그런 인기를, 평가를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그렇게 행동을 했던 것이지요. 일종의 초심자의 행운을 마치 당연한 것 인양 받아들인 거죠.”
고수가 굳이 대학로 극단의 막내를 자청한 것은 “어느 순간 주변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서”였다. 극단 사람들은 무대 청소를 하고 포스터를 붙이는 고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연예인이 와서 잠깐 있다 와서 갈 것으로 짐작해서였다. 그러나 고수는 1년여 동안 ‘연예인’이란 티를 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극단의 배우들도, 혹은 지방 공연장의 관객들도 고수를 극단의 스태프나 배우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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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돌아온 엄사장’을 통해 다시 초심을 기억해낸 고수는 스크린 복귀작으로 ‘백야행’을 선택했다. '백야행‘에서 고수가 연기한 요한은 아버지의 비밀과 미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삶의 어둠속으로 들어간 인물. 고수는 요한을 연기하기 위해 극중 요한처럼 사람들을 피했고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다.
“요한은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한 여자를 위해서 계쇽 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가 흔한 캐릭터는 아니니까요. 그 살인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미호에 대한 감정 때문에 번민하죠.”
요한의 복잡한 심리는 극중 요한의 베드신을 통해 극적으로 전달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원치 않는 살인을 하는 요한. 정작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 사랑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안고 싶지만 안을 수 없는 미호에 대한 원망과 남성으로서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요한의 눈빛은 오히려 고요해지고 깊어지며 우수를 머금는다.
“사실 여배우들만 베드신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남자 배우들도 베드신이 곤혹스럽고 부담됩니다. 그런데 ‘백야행’은 결국 미호와 요한이란 인물의 내적 갈등과 감정의 파국이 중요했고 이를 표현하는 게 베드신만큼 극적인 건 없었습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고 결국 베드신에서도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요한에 대해 동감했습니다. 호흡이 없는 인물의 베드신을 만들려 했는데 그게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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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빗대 연기의 고수? 혹은 삶의 고수가 될 생각은 없냐고 실없이 물었다. 고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뒤 답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을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있지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알면 행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그 말을 많이 되 뇌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라도 아는 척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젠 ‘아 그건 제가 잘 모르니 알려 주십시오’라고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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