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뛴다… 오른쪽 다리와… 마음속의 왼쪽 다리로

희귀병으로 한쪽 다리 절단 박영길씨 '도전! 42.195㎞'
춘천 마라톤 앞으로 한 달
  • 등록 2008-09-26 오전 8:03:35

    수정 2008-09-26 오전 8:03:35

[조선일보 제공] 23일 오후, 어두워진 인천대공원 호숫가 도로에 박영길(43)씨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10월 26일) 42.195㎞에 도전하는 그의 왼쪽 다리는 하얀 플라스틱 의족이었다. 박씨는 달리기 전 길가 보도블록에 앉아 의족을 벗었다. 무릎 아래 남은 다리는 5㎝ 정도. 잠시 허벅지와 다리를 주무른 박씨는 의족을 끼고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약 10㎞를 3시간에 걸쳐 뛰었지만, 휴식은 살짝 돌아간 의족을 고쳐 낄 때 한 번뿐이었다. "오른쪽 다리에도 언제 병이 올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라도 행복하게 뛰고 싶습니다."

박씨는 2001년 3월 버거병(Buerger's disease·폐색성혈전혈관염·동맥이나 정맥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막히고 손가락이나 발가락부터 썩는 희귀병)으로 다리 절단수술을 받았다. 처음엔 검게 변한 엄지발가락만 잘랐다. 병이 호전되지 않아 발등의 중간까지 잘라냈다. 하지만 계속 썩는 그의 다리에 전문의는 "무릎 아래를 잘라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박씨는 막무가내로 퇴원했다. 하루에 진통제만 10알 넘게 먹었다. 고통은 더해만 갔다.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던 박씨는 결국 스스로 병원을 찾았고, 그날 오후 왼쪽 무릎 아래는 사라졌다. 이후 박씨는 방황하며 집안에서 술만 마셨다. 박씨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다리가 멀쩡한 줄 알고 일어나 바닥으로 고꾸라졌을 때의 절망감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남의 눈이 무서워 깜깜한 밤에만 잠깐 나올 수 있었다.

2004년 5월, 박씨는 문득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들(당시 5세)은 밖에서 놀지도 못하고 아빠 심부름만 했다. 아내는 생활비가 모자라 공장에서 일했다. 박씨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놀아주지도 못하는 아빠를 숨길까 두려웠다"고 했다. 정신이 바짝 든 그는 재취업한 뒤 집 근처 복싱 체육관을 찾았다. 다시 몸을 움직이자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까지 밝아졌다. 박씨는 "운동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고 말했다.

춘천마라톤 참가는 우연히 박씨의 소식을 접한 한 마라톤 동호인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지난해 12월, '페이스메이커 마라톤 클럽'의 박천식(59)씨는 박씨에게 연락해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고 했다. 박씨의 동반주(同伴走)가 될 박천식씨는 이후 한 달에 두 번 정도 전화로 조언을 전한다. 박천식씨는 "의암호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과 국내 최대규모의 마라톤 축제에서 뛴다는 것은 최고의 조건"이라며 "9시간이 넘게 걸릴 거라 예상하지만 영길씨를 도와 무조건 완주하겠다"고 밝혔다.

다리가 불편한 박씨에게 마라톤은 가장 힘든 스포츠다. 걷기도 힘든 다리로 몇 시간씩 뛰어야 한다. 연습할 때마다 의족 안으로 허벅지가 밀려들어가 살이 물러지고 찢기지만 박씨는 쉬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짝만 더 가자는 마음입니다. 복싱은 상대를 이기는 경기지만, 마라톤은 나 자신을 이기는 경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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