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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중국)=이데일리 SPN 정유미 통신원]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액션 스타 이연걸(리롄제)이 중국 최대의 자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연걸은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자신이 직접 기획한 자선기금 '일기금' 의 기념식을 갖고 더 많은 국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일기금’은 이연걸과 중국 적십자사가 손을 잡고 만들었다. '일기금'은 한 명이 매달 1위안(약 120원)씩 모으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출범 4개월 만에 400여만 위안(약 4억8000만원)이 모였다.
특히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중 11만 명이 휴대전화를 통해 성금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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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 전재산 1200억원 중 절반 기부 의사 밝혀
'일기금'은 중국 일반인 뿐만 아니라 다른 중화권 국가로도 확산이 됐다. 홍콩 영화협회에서 100만 위안(약 1억2000만원)을 기부했고, 대만 출신의 가수 주걸륜(저우제륜)은 10만 위안(약 1200만원)을 쾌척했다.
▲ '일기금'에 동참한 대만 스타 주걸륜과 이연걸
현재 200명이 넘는 각계 저명인사들이 매년 999위안(약 12만원)씩 기부하기로 약정하는 등 '일기금' 자선 운동은 중화권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일기금'을 통해 조성된 기금은 앞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성금과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치료를 위해 주로 쓰이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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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어린 시절과 최근 겪은 죽음의 고비가 나를 변하게 했다"
이연걸이 이렇게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 캠페인에 적극 나서는 것은 힘들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최근 겪었던 몇 차례의 위기 때문이다.
이연걸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3형제가 한 침대에서 자야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화권을 대표하는 액션 스타로 사랑받고 있지만 그는 늘 어린 시절의 어려운 생활을 잊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또한 최근 몇년간 그가 겪은 죽음의 고비들은 기금 운동을 결심하는 촉매제가 됐다. 이연걸은 2004년 12월 쓰나미가 아시아를 강타할 때 몰디브의 한 호텔에서 가족과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런 파도에 딸이 휩쓸리자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딸을 구한 뒤 대피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 후에도 이연걸은 2005년 인도 성지 순례 중 대지진을 겪었고, 영화 '무인 곽원갑' 촬영 후 혼자 티베트를 방문했다가 해발 4,600미터에서 고산병에 걸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기도 했다,
2005년 10월 이연걸과 '무인 곽원갑' 출연진은 50만 위안(약 6000만원)을 출연하여 기금 설립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2006년 12월8일 '이연걸 기금 마련 계획'이 공개되었다. 이연걸은 당시 100만 홍콩 달러(약 1억 1900만원)를 기부했고, 부인 리지가 그 후 같은 금액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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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240억원짜리 집때문에 횡령 의혹 휘말리기도
'일기금' 설립 캠페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큰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이연걸은 상하이에 대지와 건축비를 합쳐 2억 위안(약 240억원)이 넘는 집을 짓고 있었는데, 이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자선기금을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연걸은 의혹이 증폭되자 "땅은 16년 전인 1991년 아내가 자신의 고향인 상하이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사들인 것이고, 건축도 쓰나미가 몰아닥친 2004년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그가 엄청난 부를 향유하고 있는 데 대하여 비난하는 목소리가 생겼다.
이연걸은 “몇몇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상하이 호화 주택 파문'으로 냉소적이던 여론들도 이후 이연걸에게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