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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재범기자] 가수에게 과연 음반은 어떤 의미일까.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 되면 내는 당연한 것, 아니면 정말 어렵고 힘든 과정을 넘어 세상에 내놓은 소중한 분신같은 존재.
28일 쇼케이스 무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가수 길건(29)의 모습은 '단군 이래 최대의 침체'라는 요즘 대중음악계에서 가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한번쯤 생각케 했다.
길건. 당대의 섹시스타 이효리의 춤선생으로 유명한, 가요계에서 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인공이다. 관능적이면서 역동적인 그녀의 춤사위는 팬 못지않게 동료 가수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어지간한 남자보다 더 털털한 성격 덕분에 그녀의 이름 앞에는 '여장부'란 수식어가 곧잘 따라다닌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길건이 가수에게는 어느 곳보다 즐겁고 설레이는 자리일 쇼케이스 무대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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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서트 때 백댄서였는데, 지금 동료 가수로 격려받는 게 믿기지 않아..."
길건은 28일 오후 8시, 서울 홍익대 근처 클럽 '도너츠'에서 2.5집 앨범의 쇼케이스를 가졌다.
이번 쇼케이스의 제목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본 어게인'(Born Again).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그녀다운 제목이다.
하지만 이 제목의 행간에는 사실 종교적 의미보다 그녀가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가수로서의 치열한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길건은 이날 쇼케이스에서 '흔들어봐' '샤워' 등 2.5집 싱글 음반에 담긴 2곡의 신곡을 선보였다. '흔들어 봐'는 힙합과 라틴 리듬이 섞인 흥겨운 분위기의 노래이고, '샤워'는 후니훈의 랩 피쳐링을 시작으로 신세사이저가 연주하는 산뜻한 8비트 리듬이 매력적인 곡이다.
길건은 쇼케이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두 노래의 무대를 힘과 기교, 우아함과 섹시함이 어우러진 멋진 춤으로 장식했다.
그녀의 이날 무대를 격려하기 위해 행사장에는 이수영, MC몽, 박탐희, 하리수, 박수홍, 자두 등의 동료 연예인들이 함께 했다. 많은 동료들의 방문에 한껏 상기됐던 길건은 이수영이 무대에 올라와 격려의 꽃다발을 전하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수영과 길건은 1979년 동갑내기. 둘은 이수영의 콘서트 때 길건이 댄서로 참여하면서 친구로서의 인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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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건은 "당시 나는 댄서이고, 이수영은 가수였는데 그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며 "이렇게 같이 가수가 되어 무대에서 그녀의 격려를 받게될 줄 몰랐다"고 울먹였다.
이어 잠시 마음을 추스렸던 그녀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꼭 이 음반으로 성공하고 싶다"며 다시 한번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을 떨구었다.
댄서에서 가수를 하겠다고 나선 뒤 '춤만 잘하는 반쪽 가수 아냐'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이겨내야 했고, 그 와중에 소속사까지 옮기는 등 새 앨범을 내기까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어쩌면 그녀가 쇼케이스에서 눈물 흘리는 게 당연할만 했다.
◆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
사람에 따라 생각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음반 산업이 예전과 같은 전성기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음악산업 자체가 큰 변화를 겪으면서 밀리언 셀러는 아득한 전설이 되어 버렸고, 가수가 노래 외에 연기와 같은 다른 활동까지 겸하는 이른바 '멀티 엔터테이너'는 진기한 뉴스가 되지 않는다.
또한 가수가 음악 프로그램이나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보다 버라이어티쇼에서 재기발랄한 화술을 자랑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을 보여주는데 더 신경쓴다 해도 이젠 큰 흉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음반 발표가 일부 가수에게 자신의 끼와 열정을 담은 창작물이 아닌 단지 연예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굳이 뭐라할 필요가 없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고, 팬들의 취향이 달라졌는데 '가수는 이래야 한다'는 예전의 고정관념만 강요하는 것도 고리타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정규 앨범도 아닌 5~6곡의 음악이 담긴 싱글 음반을 발표하면서 설레이고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쇼케이스를 아직 볼 수 있다는 점이 웬지 흐뭇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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