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관례' 성과급·인사평가도 논의 테이블…전통 대기업과 달랐다

ICT기업, MZ세대 쓴소리를 '성장보약'으로
네이버·카카오·크래프톤 등 대표 ICT 기업들
노사 갈등 묵히지 않고 바로 '소통 창구' 열어
대졸 개발자 초임 6천만원 크래프톤..최고 대우 약속
게임사들은 릴레이 연봉 인상으로 업계 자극
  • 등록 2021-02-25 오후 7:35:12

    수정 2021-02-25 오후 9:18:30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노재웅 이대호 기자] 비대면 훈풍을 타고 고성장을 이룬 국내 주요 ICT 기업들이 한해 성과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다.

회사 영업이익과 비교한 연봉 및 성과급 지급 기준을 비롯해 인사평가 제도 등 다양한 주제의 노사 갈등이 업계 전반에 파도처럼 일고 있다.

그럼에도 ICT 업계에 불거진 각종 논란은 돌이킬 수 없는 노사 갈등으로 번지지 않고 성장의 밑거름인 성장통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해진·김범수·장병규 “최고 대우할 것”

25일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 회사의 창업자들이 한날한시에 전 직원 간담회를 열고 소통에 나섰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직원들과 자주 만나는 소통맨인데 이번에는 다소 긴장했다. 작년에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이후 올해 성과 공유와 인사평가 등을 거치면서 잡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한 탓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전년 대비 5.2% 증가한 1조215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카카오는 120.5% 늘어난 4560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2014년부터 매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1000만원 상당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지급한 스톡옵션의 경우 오는 27일부터 첫 행사가 가능하다. 네이버 직원 1인당 차익은 19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네이버의 일부 직원들은 회사가 최고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이 불만이다. 그러면서 성과급 지급 기준 공개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해진 GIO는 “그동안 열심히 고생해준 직원들에게 정말 고마웠는데, 올해 진심으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직원들이 과거에 만들었던 성과에 대해 처음으로 그 가치를 스톡옵션을 통해 주주뿐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나누게 된 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이 GIO와 함께 참석한 한성숙 대표는 “새로운 글로벌 움직임에 맞는, 차별화된 새로운 복지 제도를 고민 중이다. 총 보상 차원에서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 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발표해 직원들의 마음을 달랬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지난 8일 10조원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뒤 임직원들과 사재 기부 방식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장으로 이날 간담회를 마련했다. 김 의장의 취지와 달리 간담회를 앞두고 회사 분위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익명 게시판에 상하 구분 없이 평가하는 인사평가시스템 내에 ‘(리뷰대상자와) 다시 함께 일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등 지나치게 수평적인 부분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다.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의 유서 소동도 있었다.

김범수 의장은 “이번 이슈는 사내 문화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성숙해져가야 할 과제다. 카카오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마음가짐과 의지가 있는 회사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보상과 관련해서도 “최고의 인재에겐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우리 산업군에서 보상이 많은 회사가 됐으면 좋겠고, (목표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 경쟁사보다 보상이 더 적다면 빨리 개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오는 3월 2일 전 직원 인사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따로 열기로 했다.



같은 날 크래프톤은 2021년 개발직군(엔지니어), 비개발직군의 연봉을 일괄 2000만원, 1500만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신입 대졸 초임의 경우, 연봉을 6000만원, 5000만원으로 각각 책정하고 게임업계 최상위 수준의 기본급 체계를 마련했다.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자(이사회 의장)와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의 의지로 전해진다. 넥슨과 넷마블이 일괄 연봉 인상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한발 늦은 모양새가 됐지만, 회사 내부에선 작년부터 고민을 이어왔다는 게 업계 후문이다.

성과급 노사 갈등을 겪었던 SK텔레콤은 설 연휴 이후 노사합동TF를 발족해 긴밀한 소통을 진행 중이다. 최종단계에서는 박정호 CEO와 소통하는 과정도 있을 예정이다. SK텔레콤의 1인당 평균급여는 9700만원(2020년 9월기준·전자공시시스템)으로 업계 최고이지만, 오는 7월 경 ICT 중간지주사 출범을 앞둔 직원들의 불안함과 겹쳐 과거와 다른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전례 없는 소통 경영..매우 바람직”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날 열린 네이버·카카오의 창업자 간담회를 비롯한 국내 ICT 전반에 걸친 ‘소통 경영’을 두고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어떤 대기업도 인센티브나 인사평가 제도를 가지고 직원들과 간담회를 연 적이 없던, 전례 없는 일이다. 그들의 한마디는 무게감이 다르고, 직원들 입장에서도 훨씬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존 전통산업의 대기업과 비교해서 성과급이나 인사평가 제도의 형평성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실리콘밸리의 ICT 대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은 회사의 성장에 맞춘 보상을 제대로 하기 때문에 인재들이 몰리고, 한국 개발자들도 1만명이나 가있는 것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이 잘 성장한 ICT 기업이 선제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보여줘야 한국 ICT 업계 전반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ICT 업계 자극제 된 게임사 릴레이 연봉 인상

ICT 업계 전반에 불고 있는 성과 보상 이슈는 게임사들의 ‘릴레이 연봉 인상’ 행진이 한 몫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게임업계를 달군 주된 이슈는 ‘일하는 문화’였다. 게임 프로젝트 특성상 마감은 정해져 있고 일정에 쫓기듯 개발 업무를 하다 보면 연장 또는 야간 근무가 수시로 이뤄졌다.

그러던 중 2018년 7월부터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제’로 일하는 문화가 일정 부분 개선되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성과 보상’으로 옮아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업계 1위인 넥슨은 개발자 초봉이 4200만원, 비개발 직군 초봉이 3800만원 수준이었고, 크래프톤은 개발자 초봉이 4000만원 수준에 머물렀는데, 업계 1위 게임사 넥슨이 전 직원 연봉 800만원 일괄 인상으로 먼저 공을 띄우면서 게임사 연봉 릴레이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후 넷마블에 이어 컴투스, 게임빌도 800만원 인상을 내걸었다. 크래프톤은 더 높였다. 개발직 2000만원, 비개발직 1500만원 일괄 인상이다. 신입 개발직 초봉은 6000만원으로 맞췄다.

이 같은 소식은 ICT업계에 충격파를 안겼다. 한 개발사 대표는 “주요 게임 기업들이 조단위 매출을 내기 시작하고, 몇몇 프로젝트에서 큰 성공을 맛보면서 전체 인원에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며 “게임사들의 이러한 직원 대우는 타 업계에도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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