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체코 반독점당국이 미국·프랑스 원전기업의 진정을 받아들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현지 원전 건설 계약을 ‘일시 보류’ 조치했다. 경쟁사의 어깃장에 15년 만의 한국형 원자력발전소(원전) 수출이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한수원은 이번 조치가 진정 접수에 따른 당연한 절차라며 내년 3월을 목표로 진행 중인 본계약 협상은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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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체코 반독점사무소(UOHS)는 이날 미국 웨스팅하우스(WH)와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이의제기에 따라 CEZ와 한수원 간의 계약을 일시보류 조치했다.
한수원을 필두로 한 팀코리아는 올 7월 경쟁사들을 제치고 24조원 규모 체코 원전 두코바니 5·6호기 신규 건설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며 15년 만의 한국형 원전 수출의 9부 능선을 넘은 바 있다. 한수원은 한전기술(052690)과 한전KPS(051600),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034020), 대우건설(047040)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통해 설비용량 1.0기가와트(GW)의 원자로 APR1000 모델을 포함한 현지 원전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 아래 발주사인 CEZ 자회사와 본계약 협상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입찰 경쟁에 참여했던 WH와 EDF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들어 발목을 잡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한 달 뒤인 지난 8월 체코 반독점당국에 진정을 냈다. 특히 한국형 원전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주장하고 있는 WH는 한수원이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이 자사 특허권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한수원이 이를 수출하려면 WH와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WH는 앞서 미국 법원에도 한수원을 상대로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체코 정부는 이곳에 원전 2기를 신설키로 하고, 지난 7월17일(현지시간) 사업자 본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팀 코리아’를 선정했다. (사진=한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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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처가 한수원의 우선협상 권리를 박탈하거나 본계약 협상에 결정적 결격 사유인 것은 아니다. UOHS 관계자는 AFP에 “이번 조처가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겠다고 시사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CEZ 역시 로이터에 “우리는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때 관련법을 준수했다고 확신한다”며 한수원과의 본계약 협상 계획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한수원 관계자도 외신 보도 직후 “체코 반독점당국의 (계약 일시 보류) 예비조치는 진정 접수 관련 표준 절차에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본)계약 협상은 기존에 정한 절차와 일정에 따라 내년 3월 체결을 목표로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WH 등의 이의제기가 내년 3월 체코 원전사업 본계약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WH가 한국형 원전 초기 모델의 원천기술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이후 독자 모델을 개발했기에 독자 수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고 한·미 관계를 고려했을 때 우리가 ‘강 대 강’으로 법정 다툼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5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만큼 이 결과에 따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형 원전 수출에 필요한 한·미 원전 동맹 약화로도 이어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체코 역시 내년 10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본계약이 예정보다 늦어진다면 정권 교체 여부에 따라 사업 추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한수원이 지난 2022년 폴란드 민영 발전사 제팍과 손잡고 추진 중인 폴란드 원전 건설 사업 역시 지난해 폴란드 정권 교체를 계기로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현재 진행 중인 본계약 협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정부와 팀 코리아는 체코 당국의 요청이 있다면 우리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는 등 체코 측과 긴밀히 소통하고 공조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