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유상증자 철회냐, 정정이냐. 금융당국으로부터 정정 요구를 받은 고려아연(010130)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국이 고려아연의 부정거래 의혹과 더불어 회계 관련 심사 등 전방위 조사를 동시에 진행 중인 만큼 이번 정정 요구가 사실상 철회 압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MBK·영풍 연합과의 임시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유상증자로 추가 의결권 확보를 노리던 고려아연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금감원의 유상증자 정정 요구와 관련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금감원은 △유상증자 추진경위 △의사결정 과정 △주관사의 기업실사 경과 △청약한도 제한 배경 △공개매수신고서와의 차이점 등을 보완하도록 요구했다. 향후 고려아연이 3개월 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유상증자 계획은 철회된 것으로 간주한다.
금감원의 2회 이상 정정 요구는 사실상 철회 압박으로 읽힌다. 실제 금감원의 주요 정정 요구 사례를 보면 진원생명과학 유상증자(4회),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기업합병(2회), 틸론의 코스닥 이전 기업공개(IPO)(2회) 등 금감원이 2차례 이상 정정 요구를 한 기업들 가운데 결국 계획을 철회한 곳이 적지 않다. 최초 계획 공시 이후 자진 정정을 포함해 수차례 정정이 이뤄졌지만, 금감원의 높은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표 대결 앞둔 유증 승부수…무리수 전락 우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길이 막힐 경우 향후 임시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도 불리해질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오는 12월 18일 유상증자로 신주를 상장해 추가 의결권을 확보하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임시 주총은 커녕 내년 정기 주총까지 유상증자를 완료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전날 한화 지분을 매각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고려아연은 ㈜한화 지분 7.25%를 주당 2만7950원에 한화에너지에 넘기고 약 1520억원을 현금화했다. 한화는 김동관 회장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친분으로 대표적인 고려아연 백기사로 꼽히는 곳이다. 당초 유상증자에 한화가 참여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으나, 유상증자 철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분 매각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한화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고려아연은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 가운데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표 대결이 시급한 상황에서 상환 대신 지분 확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