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발발 책임 놓고도 美·中 ‘네탓 공방’

美주장 "中, 협상 막판 작업 중 합의문 45페이지 일방 삭제"
中주장 "미국이 막판에 물품 가격 올려"
대화 문 열어놓았지만 대응수위 날로 높아져
  • 등록 2019-05-15 오후 6:09:33

    수정 2019-05-15 오후 6:09:33

△1월 31일 무역협상을 위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한 류허 중국 부총리 너머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손가락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다섯 달에 걸친 무역협상이 파열음을 낸 배경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네 탓 공방’을 이어나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5일 소식통을 인용해 양국 간에 이어지던 무역협상이 파국에 이른 것은 중국이 무역합의문 초안을 일방적으로 45페이지나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미·중 협상단은 7개 분야 150쪽에 달하는 합의문 초안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달 초 이 합의문을 1054쪽으로 수정·축소한 뒤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송부했다. 분량으로만 보면 전체 합의의 3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중국이 삭제한 부분은 미국 측이 요구한 ‘강제적 이술 이전’, ‘과도한 산업정책’을 법 개정으로 강제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측은 이를 어길 경우 행해지는 다양한 패널티를 모두 삭제한 텅 빈 합의문을 보냈다. 닛케이는 “합의를 담보하는 부분이 사라지면 남은 105페이지 합의문은 단순한 문자의 나열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일부러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행동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트윗을 통해 ‘미국산 수입품 2000억달러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린다’는 트위터 글을 올리며 무역전쟁이 재발하게 된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비치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서 “중국이 합의를 깼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중은 무역 협상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지만, 지난주 중국이 약속 중 일부를 어긴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중국도 자신들의 합의에 수정을 가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바 있다.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류허 중국 부총리는 미·중 갈등이 커진 이유에 대해 ‘본문의 형평성’을 꼽으며 “지난해 이후 양쪽의 담판은 몇 번이나 반복됐고 여러 작은 ‘곡절’이 발생했다. 이는 정상적인 일”이라며 “자기 판단에 따른 (중국의) 결정을 ‘후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닛케이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이번 무역합의안을 “내정 간섭을 법률로 명문화토록 하는 불평등 조약”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를 아편전쟁 종결 후 청나라와 영국이 맺은 난징조약(1842년), 청일 전쟁의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 등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과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목소리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류 부총리가 가져온 협상안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워싱턴을 방문한 류 부총리는 시 주석의 ‘특사’라는 공식직함이 빠졌다. 이는 협상을 주도해왔던 류 부총리의 재량권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 측이 정작 협상 난항의 이유에 대해 미국 측의 책임이라고 돌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최근 열린 설명회에서 미국 측이 지난해 12월 합의했던 것보다 더 많은 물품을 구매하라고 요구해왔다고 비난했다. 중국 측 외교부협상 도중 태도를 바꿨다고 비난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며 “약속을 어기는 것은 중국인에게 절대 불가능하다”(The hat that...violates promises is absolutely not on the Chinese head)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이 발언은 중국의 미국산 상품 수입 규모를 중국이 무역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것보다 2~3배 늘려달라는 요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3월 미국 경제매체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6년간 최대 1조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상품 구매를 제안한 중국에 1조 2000억~2조 4000억달러 어치를 더 살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네 탓 공방’ 배경에는 향후 있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신경전이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대화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감정싸움은 격화되는 모양새다. 13일 중국 관영 CCTV 메인 뉴스 앵커 캉후이(康輝)는 “싸우는 게 두렵지 않다. 싸워야 한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5000년 넘는 풍파를 겪었는데, 겪어보지 않은 일이 뭐가 있겠는가? 민족 부흥의 위대한 과정을 실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어려움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감을 굳게 하고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웨이보를 통해 30억번 이상 리트윗됐다.

미국 역시 대응강도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미국 기업들이 국가안보 위협을 제기하는 회사들의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기업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화웨이에 대한 제재다. 13일에는 중국 정보기술(IT) 회사들을 미국의 민감한 기술이나 관련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 기업 목록’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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