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ABS-CBN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비탈리아노 아기레 필리핀 법무장관은 이날 필리핀 상원 공공질서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대사관 일부 직원이 한국 조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정보를 법무부 산하 국가수사국(NBI)의 전 직원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상원 청문회는 작년 10월 발생한 필리핀 경찰관들의 한국인 사업가 지 모(사망 당시 53세) 씨 납치·살해사건을 다루는 자리였다.
아기레 장관은 지 씨가 살해되기 전 한국 조폭에 의해 2차례 납치된 적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조폭이 지 씨를 적으로 생각하고 국가수사국이나 경찰의 부패 직원을 고용해 살해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앞서 온라인 도박업체에 인력을 공급하던 지 씨가 한국인과 정부 관료 등이 포함된 범죄 조직에 상납을 거부했다가 이 조직의 청부를 받은 경찰관들에 의해 납치·살해됐을 수 있다고 현지 언론이 경찰관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런 아기레 장관의 발언은 지 씨 사건 배후에 한국 조폭이 있고 한국대사관이 이를 비호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대해 한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대사관 직원들의 조폭 연계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부인하며 아기레 장관의 해명을 요구했다.
한국대사관은 지난 13일 대사관 총영사와 경찰영사가 지 씨 미망인과 함께 아기레 장관을 면담했지만, 한국 조폭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국대사관은 “대사관 직원들과 지 씨 미망인은 지씨가 양심적인 사업가로 정직한 삶을 살았으며 악의적인 한국 사람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며 아기레 장관의 발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재신 주필리핀 한국대사는 24일 오후 아기레 장관을 만나 직접 해명을 요구할 계획이다.
그러자 현지 경찰관들이 저지른 지 씨 납치·살해 사건의 초점을 흐리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물타기’ 의도가 아니냐고 한국대사관과 교민들이 반발했다.
이에 필리핀 경찰은 한국에서 도망친 일부 조폭이 세부에 숨어있지만, 현재 활동 중인 조폭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국가수사국과 경찰이 지 씨 사건을 공동 수사하고 있지만, 처벌 대상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등 지지부진해 수사 의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수사국은 10여명의 경찰관과 조력자를 기소 대상으로 법무부에 건의한 반면 경찰은 일부 국가수사국 직원도 연루돼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