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보조금 향방은…삼성·SK 촉각
재계 한 고위인사는 6일 이데일리에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연속성 측면에서 트럼프 2기에 따른 불확실성이 더 클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한 만큼) 대미 사업, 대중 사업 등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분야는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린 반도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바이든표 반도체법(칩스법)이 어떻게 바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미국 안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각각 64억달러(약 9조원), 4억5000만달러(약 6300억원)를 지원받기로 돼 있다.
|
반도체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 때 “공장을 하나 지을 때 20조원이 든다”며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안 준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사업에 있어 정부 보조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뒤집을 경우 국내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장 건립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보조금, 고관세 등 미국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며 “추후 새로 나올 정책들을 보면서 득실을 따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를 더 강하게 할 것이라는 점도 간단치 않은 변수다. 창신메모리(D램), 양쯔메모리(낸드플래시) 등 중국 기업들의 메모리 생산능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와중에 미국이 ‘동맹’을 고리로 국내 기업들에 중국 배제를 요구할 수 있는 탓이다. 트럼프 집권 기간 동안 중국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는 상황까지 배제하기 어렵다.
“배터리 보조금 축소·요건 강화할듯”
배터리업계도 고심이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의존도가 높았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올해 3분기 AMPC 금액 4660억원을 제외하면 17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SK온 역시 AMPC 금액(680억원)을 빼면 여전히 적자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IRA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보조금 축소 가능성도 작지 않다. 오익환 SNE리서치 부사장은 “IRA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내 투자를 많이 한 곳들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어둡게 보고 있다”고 했다.
대미 흑자 큰 車…美, 외산 견제하나
현대차그룹은 관세 인상 등 무역 장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가동을 시작했다. 미국 생산 전기차에 대해 제공하는 IRA 보조금(대당 7500달러)을 받기 위한 조치였던 만큼 보조금 혜택이 줄어들 경우 전략 변경은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보조금 혜택이 줄어들 경우 하이브리드 생산에 집중하며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강화로 한국 기업들이 얻는 이득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강화로 인한 리스크가 더 클 것”이라며 “공급망 측면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기업들과의 협업 등을 통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한국산(産) 자동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289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보편관세 10~20%를, 중국산에 고율관세 60%를 각각 부과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대미 흑자가 큰 자동차를 필두로 견제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워싱턴 인맥을 총동원하는 정보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4대 그룹은 미국에서 매 분기마다 최대 규모의 로비 자금을 쓰고 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미국 행정부가 갈수록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로비 액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진출 기업들을 돕기 위한 정부의 대미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