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부 못 믿겠다'…불신의 벽에 갇힌 민주노총 강경파

조직 내 소수 강경파에 노사정 합의 가로막혀
"비정규직 양산한 외환위기 대타협 전철 밟을 것"
합의 코앞서 좌초…비판 피하기 어려울 듯
  • 등록 2020-07-01 오후 7:29:30

    수정 2020-07-01 오후 9:30:25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김나경 인턴기자]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내 일부 강경파 반대에 막혀 불발 위기다. 비정규직공동투쟁 등 민주노총 내 강경파는 이번 노사정 합의문이 고용 유지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김명환 위원장의 협약식 참석을 가로막았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예정된 가운데 민주노총 불참으로 취소됐다. (사진=이영훈 기자)
소수 강경파에 가로막힌 온건파 위원장

노사정 합의문에 반기를 든 강경파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소수다.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민파나 조건부 찬성 기조인 중앙파가 민주노총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번 합의에 의지를 보였던 김 위원장은 국민파로 분류된다. 지난달 30일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 사회적 합의문 추인이 어려워지자 김 위원장은 “일부 중집 성원들이 일관되게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하는데 살려가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중집을 마쳤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소수의 현장파는 합의문 이전에 사회적 대화 자체를 거부해 왔다. 사회적 대화는 결국 노조가 정부와 기업의 들러리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날 협약식이 불발된 후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는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기업주들을 위한 타협”이라며 “노동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는 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경파는 이번 합의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 대타협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대타협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번 합의문 역시 ‘해고금지’가 빠져 있어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22년 전 노사정 대타협은 정리해고 파견법이었다”며 “가장 먼저 타협할 부분은 해고금지인데 합의안에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정규직 정리해고에 대해 정부는 아무일도 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노사정대타협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사정 합의를 반대하는 민주노총 비정규직 조합원 등 반대 조직들이 1일 오전 2020년 제11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 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 복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중집을 소집해 노사정 합의 참여를 위한 마지막 의견 수렴에 나섰으나 반대 조직에 의해 노사정 합의는 무산됐다. 연합뉴스 제공
고질적 계파갈등…비판 피하기 어려워 보여

앞서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문제를 두고도 조직 내 강경파를 설득하지 못해 결국 불참했다. 이후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경사노위 틀 밖에서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먼저 제안했으나 이번에도 협약식을 직전에 내부 반대로 노사정대타협을 좌초위기로 몰아넣으면서 민주노총이 제1 노총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태로 ‘온건파’ 김 위원장의 리더십 역시 도전받게 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중집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때 ‘거취’ 문제까지 언급하며 사회적 대타협 참여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지만 결국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데 실패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 공동투쟁 등 강경파가 힘을 얻으면서 사회적 대화가 좌절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사회적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은 강경파 내에서도 소수임에도 민주노총이 이들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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