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史 비극 '제주 4·3'…군·경, 71년만의 사죄에도 상처는 여전

민갑룡 경찰청장, 추념식 참석해 머리숙여
국방부 "깊은 유감과 애도"…차관, 추모공간 찾아
文대통령 "진상규명, 배·보상 문제 더욱 힘쓸 것"
  • 등록 2019-04-03 오후 5:43:48

    수정 2019-04-03 오후 5:58:53

서주석 국방부차관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아 작성한 방명록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제주 4·3 평화공원 내 전시장에 있는 문구다. 국방부와 경찰이 3일 제주 4·3사건 발생 71년 만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동안 군과 경찰은 제주 4·3 사건이 무장봉기를 진압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주 4·3 71주년 추념식 ‘4370+1 봄이 왐수다’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그는 행사장 한켠에 마련된 방명록에 “4·3에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하며 비극적 역사의 상처가 진실에 따라 치유되고 화해와 상생의 희망이 반성에 따라 돋아나길 기원한다”고 썼다. 국방부도 공식입장을 통해 “제주 4·3 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추념식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이날 오후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미국 출장 중인 정경두 국방장관을 대신해 광화문 광장의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제주4·3 제71주년을 맞아 열린 ‘4370+1 봄이 왐수다’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빨갱이’ 잡겠다며 대규모 양민 학살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여수·순천사건과 함께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제주 4·3 사건의 도화선은 경찰이 시위 군중을 겨냥해 6명 사망·8명 중상을 입힌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이다. 이는 ‘3·10 총파업’으로 이어졌는데, 미군정은 이를 조사하면서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선동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고 좌익 세력 색출 작업에 나선다.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은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를 통해 12개 경찰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사건이 본격화 됐다.

미군정은 국군경비대에 진압작전 명령을 내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렇게 투입된 9연대는 강경 진압 작전을 통해 중산간 마을 95% 이상을 불타 없앴다. 이후 2연대 역시 공개적인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빨갱이’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즉결처분을 일삼았다. 400명여명의 주민을 총살한 ‘북촌사건’이 대표적이다. 100명 이상 희생된 마을도 45개소에 이른다. 6·25 전쟁이 발발 이후에는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그리고 산으로 숨은 사람의 가족 등에 대한 예비검속으로 학살이 이어졌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무려 7년 7개월간 제주 4·3 사건은 계속됐다.

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제주4·3 제71주년을 맞아 열린 ‘4370+1 봄이 왐수다’ 추념식에서 한 유족이 헌화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 예우 문제 여전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4028명이다. 이에 더해 예비검속 및 재소자 등을 합할 경우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현대사에서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다. 신고된 희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860명)이 전체의 11.9%다. 여성의 희생(21.3%·2,985명)도 컸다. 재일 한국인 출신 중 제주 출신자가 많은 이유는 제주 4·3 사건 당시 군·경과 우익단체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오사카 등으로 피난을 갔기 때문이다. 일명 ‘보트피플’이다. 6·25 전쟁 당시 제주도민들은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고 한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추모와 진상 규명 움직임이 계속됐지만,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며 진상조사가 이뤄졌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대규모 학살됐다는 결론에 따라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사건 55년 만에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머리를 숙였다.

2006년 4·3사건 58주기 위령제에 처음 참석한 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희생자와 그 유족에 대한 예우 등에 문제가 있어 특별법 개정안 발의가 계속되고 있다. 20대 국회에 일부 개정안 2건, 전면 개정안 3건이 계류중이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권한을 강화하고 희생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 내용 등이 골자다. 여야간 이견으로 아직 법안 심사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념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이라며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배·보상 문제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직접 추념식에 참석한바 있다. 현직 대통령의 참석은 노 전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이자 12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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