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이름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고 짧게 적었다. 두 사람은 과연 화해를 한 것일까.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 전 대통령측은 “형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와 사전 협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화해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악연은 멀리 19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26 사태 후 서울에는 봄이 왔다. 정치적 해빙기를 맞은 것이다. YS와 DJ, 김종필 자민련 총재(JP) 등 ‘3김’은 기지개를 켜며 헌법이 개정돼 대통령 직선제에 의한 정통성있는 민주정부가 수립되기를 희망했고, 후보로 나설 요량이었다.
봄은 짧았다. 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쿠데타로 민주화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YS는 가택연금을 당했고 DJ는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YS가 가택연금 상태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성명서가 공개됐다. YS는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동아일보에 공개한 성명서에서, “(신군부는) 나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계엄통치를 강화하다 쿠데타적 5·17 폭거(비상계엄)를 저질러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 아무리 강한 정부도 강권으로 국민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연금 상태에서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목숨을 걸고 신군부에 맞선 것이다.
군사정권에 온 몸으로 저항했던 YS가 1987년 야권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해 군정종식이 무산되자 1990년 변절, 야합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군정세력과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YS가 3당 합당으로 가장 힘들어했다면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을 통해 비로소 여소야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신군부를 괴롭혔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12·12쿠데타 시비를 비켜갔다.
YS가 93년 문민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YS는 3당 합당 오명을 씻어내려는 듯 취임초부터 역사 바로세우기를 밀고 나갔다. 1995년에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한 후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한 후 법정에 세웠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까지 내려가 저항했지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다. YS가 정권말 두 전직 대통령을 특별사면했지만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만큼 두 사람 사이에는 앙금이 깊은 것이다. YS를 조문한 전 전 대통령이 진심어린 화해를 할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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