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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겪고도…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 파면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관가는 달라졌을까.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부당한 지시 등 ‘강요된 영혼 팔기’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해 줄을 대고 ‘입맛 맞추기’식 공약을 준비하는 ‘자발적 영혼 팔기’는 이어지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출범한다. 이에 따라 새 정권에 대비해 후보 공약을 분석하고 정책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 A씨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요즘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내놓을 ‘정책 아이템’을 마련하라는 압박이 무척 심하다”면서 “반면 새로운 일은 어지간하면 벌이지 말자는 주의”라고 귀띔했다. 사회부처 사무관 B씨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180도 바뀔 수도 있으므로 진보 후보를 겨냥한 플랜A, 보수 후보 입맛에 맞는 플랜B, 심지어 중도를 겨냥한 플랜C까지 준비하는 부처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직사회를 흔든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이나 상급자 지시에 누군가 “노(NO)”라고 했다면 최소한의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지난 1월 환율 조작 문제로 미국 워싱턴DC를 찾은 기획재정부 관료는 미국 재무부 과장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동료 과장 3명이 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부당한 지시를 받고 일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이 관료는 “미국은 앞으로도 옷 벗는 공무원이 계속 나올 것 같다더라”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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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 명령에 반대한 샐리 예이츠 전 법무부 장관 대행, 재무부 과장들 같은 관료가 없을까.
원인은 두 가지다. 개인의 자질이거나 제도다. 논해야 하는 것은 후자다. 개인 책임으로 돌릴 경우 좋은 사람을 가려 뽑는 것 외에 대안이 없어서다.
미국의 선례가 가능했던 것도 근본적으로는 제도적 차이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컨대 미국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치받을 수 있는 용기는 ‘여기 아니어도 갈 데가 많다’는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직업의 이동성이 높은 사회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민·관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형 관료제도다. 공직은 평생직장이 아니다. 기재부 대외경제국 관계자는 “미국은 사회 이동성이 높고 지식 산업이 발달해 민간 싱크탱크 등 공무원이 옮길 자리가 많다”며 “집권 세력이 자기 성향에 안 맞는다고 관두는 등 정권 교체 때마다 공무원이 몇만 명 단위로 물갈이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관료 개인의 정책 권한이 크다는 것도 제 목소리를 내는 힘이다. 미국 공직은 사람부터 뽑고 일을 맡기는 게 아니라, 특정 일을 잘할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직위 분류제’가 뼈대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일하기보다 자리마다 고유의 의사 결정 권한이 뚜렷하다는 이야기다.
박중훈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우리는 정치적으로 임용하는 정무직 공무원이 엄격한 의미로 중앙부처 장·차관 뿐이지만, 미국은 국·과장급까지 내려간다”며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므로 승진이나 인사 평가 등을 위해 상관 지시대로 따를 유인도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