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지원 없다”고 공언한 정부는 5개월 만에 이를 뒤집었고 산업은행은 법적 근거도 없는 회사채에 대한 지급보증 등 최악의 선례를 남기게 됐다.
기간 산업의 한 축인 조선업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동안 애써 지켜온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이번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으로 모두 무너졌다.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의 근간을 새로 쌓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우조선이 작고 단단한 회사로 살아나면 내년 이후 조선 빅3를 빅2로 재편하는 전략을 포함해 조선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선산업 재편…‘빅3→빅2’로 구조조정
최상의 시나리오는 대우조선을 작고 강한 중견 조선사로 바꾼 후 내년 이후 조선산업을 ‘빅3’에서 ‘빅2’로 재편하는 것이다. 상선과 특수선 중심의 경쟁력을 회복하면 2018년 이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의 ‘빅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이 작지만 단단한 회사가 된다면 ‘빅3’를 ‘빅2’로 만드는 전략을 포함해 조선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또 한 번의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대우조선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조선업·회계·법률 전문가 등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를(가칭) 구성할 계획이다. 대우조선 자구계획과 경영 정상화 이행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위원회 구성 취지를 살리기 위해 ‘독립 기구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 구조조정 플랜 연착륙 ‘총력’
현형 구조조정 방식은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등 채권단이 기업에 돈을 빌려준 후 해당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을 솎아내는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대우조선을 비롯한 대부분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금융당국이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면 채권단이 세부 그림을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이 방안을 제시해도 이번 대우조선 사태에서 엿볼 수 있듯 시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난 13일 정부는 이런 점을 인식해 ‘신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발표했다. 산은의 관리 체제로는 한계가 있어 민간 관리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학과 객원교수는 “대우조선을 비롯해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 구조조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일관된 원칙을 통한 투명성 확보와 접근방식에 대해선 높은 평가를 했다. 신 구조조정 플랜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나타낸 셈이다.
이행확약서는 아킬레스건
이번 과정에서 정부에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회사채 원리금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이행확약서를 먼저 내준 것이다.
산은은 산은법상 법적으로 보증할 수 없는데다 이해관계자 간 공평한 손실부담의 구조조정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보증에 선을 그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카드를 제시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채권자들이 막판까지 꿈쩍하지 않자 P플랜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이었다고 정부는 설명했지만 이는 엄연히 시장 원리와 구조조정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회사채 투자는 투자자가 그 위험을 책임져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구조조정 때마다 원리금 상환을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진통 끝에 자율적 채무 재조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산은의 최종제안이 그간 국민연금이 요구해온 ‘법적 보증에 준하는 안정장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채권자에게 대우조선 청산시 추정 사채 회수율(6.6%)에 해당하는 1000억원(1조5000억원의 6.6%)을 먼저 보장하겠다는 제안이 막판 국민연금의 마음을 돌렸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예상이 빗나가 대우조선이 다시 어려워지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