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이 사건(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야동이 아니라 성 착취·인신매매·성폭력 사건입니다. 함께 분노해주십시오. 함께 분노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함께 분노해야 바꿀 수 있습니다.”
검찰 내 성추행 문제를 제기하며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 이른바 ‘n번방 사건’에 대해 함께 분노해달라고 호소했다. 서 자문관은 “피해자 입장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있을 때 분노해준 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면서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며 울먹였다.
|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간담회’에 참석해 이인영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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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에선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게 하고 이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 유포한 ‘n번방 사건’은 ‘운영자·가입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청원 글이 역대 최다 동의를 받을 만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날 열린 간담회엔 국회·법무부·경찰·시민사회·언론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범죄 차단 방안, 처벌 강화, 피해자 보호 등 ‘n번방 사건’ 대응책을 논의했다. 특히 서 자문관을 비롯한 간담회 참석자들은 온라인 성범죄, 사이버 성폭력과 관련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서 자문관은 “검사로 근무하면서 끔찍한 성폭력 사건을 접해봤고, 일베·소라넷 등에서 이미 유사한 범죄가 셀 수 없이 벌어졌다”며 “도대체 (이들 중) 누가 제대로 처벌을 받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소라넷 운영자는 징역 4년형, 다크웹 운영자 손모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2심에서 1년 6개월형을 받았고, 무죄를 받은 사람은 셀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간담회를 주최한 진선미 의원은 “성 착취 카르텔을 끊어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강력한 처벌”이라며 “온라인 성범죄는 더 잔인해지는데, 법은 따라가지 못하고 낮은 형량, 관대한 처벌이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강력한 대처로 디지털 성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하는데, 주범인 회원은 물론이고, (영상을) 재판매한 사람까지 포함해 관련자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밝혔고,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여성과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 착취 범죄를 범해도 가볍게 처벌된다”며 “이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도록 강력한 처벌을 입법하겠다”고 말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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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이 같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영상물 사건을 공론화한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의 한 활동가는 “텔레그램에서만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모든 플랫폼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수사당국은 유사 사건에 대해) 구속수사를 의무화하고 범죄 수익 몰수를 원칙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이버 성폭력 수사팀을 증원하고, 여성 경찰관의 비율을 늘려 신고에 대한 부담을 줄여야 한다”면서 “디지털 성 범죄물 소지와 관전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단체는 이 밖에도 △24시간 수사·지원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핫라인 마련 △‘제3자 고발’ 잘 받지 않는 경찰 관행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에 경찰은 사이버 성폭력을 중대한 범죄로 간주해 관련자들을 끝까지 추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은 “(관련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는 2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해 결정할 것”이라면서 “경찰은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사이버 성폭력 사범을 검거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