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동갑내기 전경의 일기…"우리 눈앞에서 쓰러진 한열"

  • 등록 2017-06-01 오후 8:21:03

    수정 2017-06-01 오후 8:21:03

[이데일리 뉴스속보팀] "그날 한열이는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갔다… 상당히 비참하면서도 충격적이고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살 만한 모습이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 열사 사망 당시 전투경찰로 복무한 사람이 심경을 기록한 일기가 공개됐다.

1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 열사와 동갑인 최모(51)씨는 1987년 당시 대구에서 복무하다가 서울에서 시위가 잦아지자 연세대 앞으로 차출됐다.

최씨는 부대 안에서 글을 쓰다가 혼난 적이 있어 휴가를 나갈 때 기억을 되살려 일기로 남겼다고 한다.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은 그해 6월 9일에 대한 일기에서 최씨는 "그때의 상황이야 지금 상세히 기억해낼 순 없지만, 그날 한열이는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갔다"고 썼다.

최씨는 "당시 우리 중대(45중대)와 44중대가 정문을 담당해서 SY44탄을 동시에 쏘았었다. 한 개 중대에 사수가 15명 정도 되니까 약 30명이 함께 쏘아서 그 중 한 발 정도가 너무 각도가 낮았는지 한열이의 머리에서 터진 것이었다"고 기록했다.

이어 "다음날 신문엔 피 흘리며 쓰러진 채 부축 돼 일어서는 한열이의 사진이 실렸고 상당히 비참하면서도 충격적이고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살 만한 모습이었다"며 "완전 빈사상태로 이한열은 세브란스 병원에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이 열사는 그해 7월 5일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최씨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전경들은 필사적으로 시위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며 "날아오는 화염병과 돌이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무서웠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주춤거리면 그날 밤 고참에게 엄청나게 맞을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당시는 학생, 전경 모두에게 비극이었던 시대"라며 "독재정권은 학생과 전경이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도 했다.

최씨는 당시 문제의 최루탄을 쏜 것으로 의심되는 전경 2개 소대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던 상황도 증언했다.

그는 "나는 최루탄 발사조가 아니었지만, 우리 중대 발사조 30명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에서는 이들을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대충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7일부터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박물관 등에서 여는 특별기획전에서 최씨 일기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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