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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상건 황현규 기자] 경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며 15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력을 투입했던 클럽 버닝썬 수사가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빅뱅 전 멤버 승리의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리며 유착 의혹의 대표로 꼽혔던 윤모 총경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윤 총경에게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물론 뇌물죄도 적용하지 못했다. 또 역삼지구대와 버닝썬 간 유착 의혹 수사도 빈손으로 마무리하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아울러 핵심인물인 승리 구속도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찰 “윤 총경 형사처벌 조건 안돼 자체 징계”
서울지방경찰청은 15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 총경 등 경찰의 유착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윤 총경과 윤 부탁으로 몽키뮤지엄의 단속 사항을 확인해준 전 강남경찰서 A경찰관 등 경찰 3명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윤 총경은 지난 2016년 7월 승리와 동업자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가 공동운영한 주점 몽키뮤지엄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단속되자 단속 내용을 A경찰관에게 문의해 승리 일행에게 가르쳐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또 2017년 10월부터 13개월 동안 승리 일행으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도 있다. 그는 승리 일행과 골프를 4번 치고 식사를 6번 같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윤 총경이 승리 일행으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은 사실과 관련해 윤 총경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지만 접대액수(268만1407원)가 형사처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자체 징계만 내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총경의 사건 개입 시점과 골프 접대 시점이 1년 이상 차이가 난다”며 “접대 시점에 별도 청탁이 확인되지 않아 뇌물죄 적용대상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삼지구대와 버닝썬 유착 의혹 없었다”
내사 착수 후 2개월간 유착 혐의로 윤 총경을 포함해 현직 경찰관 8명을 입건했다. 이 가운데 구속자는 단 1명이었다. 이 중 버닝썬 유착과 직접 관련된 경찰관은 버닝썬에 미성년자가 출입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경찰관 한 명뿐이다. 유일하게 구속된 경찰관도 과거 다른 클럽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해준 혐의다. 입건자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윤 총경의 경우도 김영란법과 뇌물죄 혐의를 밝히지 못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만 적용하는데 그쳤다.
경찰은 버닝썬 사건 최초 제보자인 김상교씨가 지난 3월 의혹을 제기한 역삼지구대와 버닝썬과의 유착 정황도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폭행 사건 때 출동한 역삼지구대 경찰관 및 버닝썬과의 유착을 의심할만한 통화 내역이나 계좌거래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특별히 유착 관련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승리 신변 확보못했지만 향후 수사 문제 없어”
경찰은 성매매 알선과 성매매, 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 등을 받은 승리에 대한 수사에도 빈틈을 보였다. 경찰은 그동안 승리를 18차례나 소환해 관련 혐의를 확인했다. 승리가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만큼 수사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경찰은 승리의 신병 확보에 실패했지만 수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에 향후 수사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기각 사유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수사를 마무리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수사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 승리 영장 재신청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수사에 최선 다했다지만 제식구 감싸기 비난도
경찰은 이번 수사 결과 발표로 사실상 버닝썬 유착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공은 검찰로 넘어갈 전망이다. 경찰은 승리를 군 입대 예정일인 다음달 24일 전에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윤 총경 등 유착 의혹과 관련된 경찰관들도 검찰에 넘긴다.
경찰은 버닝썬 등과 경찰간 조직적 유착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최초로 시작된 것이 언론을 통해 시작됐다. 막연한 의혹 제기에서 시작됐는데 윤 총경과 관련해 실제로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알려줬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부실수사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3월 대검찰청에 경찰 유착 의혹 등이 담긴 자료 등을 넘겨 수사를 의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투여한 인력과 시간에 비해 결과가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수사 결과가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