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은 10일 서울 서대문구 본청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기관끼리 다투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가 검찰과 대립할 하등의 이유가 없고 국민만 바라보고 일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최근 서울지역 경찰서장 등의 비위 혐의에 대한 검찰의 잇따른 수사착수가 경찰견제 차원이 아니냐는 지적에 “검찰이 그렇게 치졸하게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헌법에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수사권 뿐 아니라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선후보 잇따라 檢 개혁 공약…김수남 “수사권 남용 통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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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검찰은 공개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지난 7일 오전 서울동부지검 신청사 준공식에서 “검찰은 경찰국가시대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준사법적 인권옹호기관으로 탄생한 것”이라며 “선진국을 비롯해 국제재판소나 국가 간 연합체도 검사에게 수사와 공소 기능을 맡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대표적인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해혁단장은 “검찰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를 제대로 수사했다면 큰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의 국정상황에 검찰은 최소한 공범”이라며 비난했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권순범 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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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장은 양측이 수사권 조정문제로 감정이 고조되자 이날 간담회를 빌어 진화에 나섰다. 이 청장은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아닌 국민에게 바람직한 발언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부터 진경준 전 검사장 120억 주식대박 사건,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초기 부실수사 의혹 등으로 어느 때보다 검찰개혁에 요구가 크다는 점에서 경찰은 이번이 수사권 독립의 최대 호기로 보고 있다.
국회에 진출한 경찰 출신 의원들도 적극적인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올 초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한 형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경찰의 20년 수사권 독립전쟁이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무리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경찰이 수사권 독립 요구하고 나서자 법무부가 앞장 서 무산시켰다. 2005년에는 검찰 견제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수사권 독립을 추진했지만 검찰과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추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두고 검경이 마찰을 빚자 국무총리실이 검경간 수사권 조정에 나섰지만 결국 조율에 실패하기도 했다.
특히 20대 국회에 진출한 경찰 출신 의원이 7명에 불과한 반면 검찰 출신 의원은 수십명에 달한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일반 국민은 검찰개혁을 원하지만 또 다른 공권력인 경찰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권 조정문제는)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국민 동의를 받으려면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국민의 의견과 정치권의 움직임, 정권초기 개혁 우선순위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