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방향잃은 당정…공시가 인상 속도 조절하나

여당, 공시가 인상률 상한 검토 들어가
국토부는 세 부담 완화 방침 밝혔다가 반나절 만에 철회
전문가들 "정부·여당, 선거 앞두고 딜레마 빠진 듯"
  • 등록 2021-04-01 오후 6:09:02

    수정 2021-04-01 오후 9:28:19

[이데일리 김나리 기자] ‘4·7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4년 내내 규제를 해오던 정부가 선거가 임박하자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꺼낸 데 이어 이번엔 ‘부동산 공시가격 인상률 상한’과 ‘종합부동산세 기준주택 상향조정’ 카드까지 슬쩍 내밀었다. ‘공시가 현실화율 90% 달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선거용에 그칠 것으로 판단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 영등포구 우리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공시가 현실화율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당에서 공정 과세와 급격한 인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고려해 합리적인 조정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여당발 ‘공시가 인상률 상한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서울시장 여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박 후보는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경우 공시가 인상률이 10%를 넘지 않게 조정하는 방안을 당에 강력히 건의하고 추진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여당이 공시가 인상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공시가 급등 문제가 겹치면서 부동산 민심이 급격히 악화한 탓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그동안 견지해온 정책과 정 반대되는 내용을 부랴부랴 들고 나온 것이다.

현재 공시가 급등으로 세 부담 증가가 예상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진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평균 69%에 그쳤던 공시가 현실화율(시세반영율)을 2023년까지 90%로 상향하겠단 방침을 밝힌 후 공시가 끌어올리기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러나 집값이 폭등한 가운데 공시가 현실화가 추진되면서 올해 전국 공동주택 평균 공시가격은 14년 만에 최고치인 19.08%로 급등했다. 서울도 19.91%나 올랐다. 세종은 무려 70.68%가 뛰었다.

이에 서초구, 제주도는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으며 세종은 국토교통부에 공시가 하향 조정을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1일 시정 브리핑을 통해 “시내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으로 이의 신청을 준비하는 등 시민들이 보유세 급증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며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에 아파트 실거래 가격의 편차와 적은 거래량 등을 반영해 공시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정책 방향성이 여당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내부에서도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공시가 급등에 따른 세 부담 보완책 마련 방침을 밝혔다가 반나절 만에 부인했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내년에도 공시가격이 많이 오르면 세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내년에 공시가 6억원을 넘어서는 아파트가 얼마나 있는지 본 뒤 세 부담 감면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공시가 현실화에 실질적으로 제동이 걸리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선거철을 맞아 공시가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세 규모 등을 감안해보면 전체적인 방향에서 공시지가 현실화율 90% 달성 방침을 바꾸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조세 규모를 갑자기 줄일 수도 없거니와 지지층의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이 지금 선거를 앞두고 딜레마에 빠진 듯 하다”고 꼬집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도 “공시가 현실화율 인상 제한은 선거용 액션”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재산세 감면 대상을 6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로 한정하면서 ‘똘똘한 한채’를 가지고 있다가 폭탄을 맞은 실수요층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 선거라면 모를까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세 부담도 완화해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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