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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보이콧을 선언했던 오세훈 전(前) 서울시장이 12일 당권 경쟁에 전격 복귀하면서 한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논란과 당 대표 후보들의 연이은 불출마 선언으로 전당대회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위기에서 “이번 결정으로 한국당이 오세훈에게 크게 빚을 졌다”는 얘기가 당내에서 나온다.
오 전 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당이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정당이 아니라 특정 지역·이념만을 추종하는 정당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다”며 재등판 배경을 밝혔다.
앞서 오 전 시장은 오는 27~28일 열리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날짜가 겹치는 전당대회가 2주 이상 연기되지 않을 경우 이날 진행되는 후보등록을 거부하겠다고 한 바 있다. 반면 오 전 시장과 함께 전당대회 일정 변경을 요구했던 홍준표 전 대표와 심재철·정우택·주호영·안상수 의원은 전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선되면 좋고 안 되도 黃 대안세력으로”
오 전 시장에게 10년째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보수진영 잠룡(潛龍)’이다. 1961년생인 오 전 시장은 40대 중반에 불과했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래 줄곧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번 승부수로 전당대회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2022년 대권도전 등 차기 행보를 위한 발판을 충분히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당권 레이스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경선 룰 변경 요구 등을 접고 당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당내 한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오 전 시장이 당에 큰 기여를 했다”며 “당선이 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직 검증이 안 된 황 전 총리에 대한 확실한 대안 세력으로 남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의원은 “당 입장에서는 전당대회를 통해 두 명의 정치적 자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이번 기회로 서울시장 직을 던졌던 부정적 이미지도 희석될 것”이라고 했다.
오 전 시장 역시 당장의 유불리보다 당과 보수진영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옥중 박심(朴心·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 논란을 지적하면서 “매우 서글프고 지켜보기에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당이 보수우파를 위한 정당이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위한 정당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한 말이 TK(대구·경북)정서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면서 “선거전에서 불이익을 본다고 해도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黃 우세하지만 “정치 끝까지 모른다” 얘기도
전당대회까지 정확히 보름이 남은 상황에서 오 전 시장이 판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정치권의 시각이다. 오 전 시장이 전당대회 날짜 연기와 TV토론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수일 째 보이콧을 하던 동안에도 황 전 총리는 당심과 민심을 잡기 위한 행보를 이어왔다.
한 한국당 초선 의원은 “오 전 시장이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대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판세 자체는 양강이라고 해도 황 전 총리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 역시 “바닥에서 황 전 총리에 대한 당원들 인기가 상당하다”며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거쳤지만 정치 신인이다 보니 신선함이 있다”고 했다.
반면 황 전 총리가 한 번도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다는 점과 난립하던 후보들이 정리돼 두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결과는 열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굵직굵직한 선거전을 몇 차례나 경험한 오 전 시장이 TV토론에서 강점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내 한 중진 의원은 “정치는 끝까지 모른다”며 “현재 당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변화와 화합 의지를 어떤 후보가 명확하게 나타내는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