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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진환·김아라 기자]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받는 총 24조원 규모의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극도의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29일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발표한 가운데 탈락한 경기 남부와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발과 함께 심각한 역차별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은 “제2의 4대강 사업이 우려된다”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의 묻지마식 집행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예타 면제에 선정된 사업들도 앞으로 진행될 기획재정부와의 실무 협의 과정에서 국비 지원 규모를 둘러싼 이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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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전북·경기북부 축제분위기…경남 남북내륙철도 사업비만 4.7조
정부가 29일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오른 지방자치단체 중 경남과 전북, 경기 북부 등은 축제의 분위기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거쳐 경남 주민들은 50년 넘게 기다려온 숙원사업인 서부경남KTX(남부내륙철도)가 마침내 추진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환호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경남도민의 50년 숙원사업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예타면제 사업들은 경남을 포함한 국가 경제 전체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며 “서부경남KTX가 지역경제 재도약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4000억원 규모의 인공지능 중심의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사업이 예타 면제를 받은 광주시는 “지역균형 발전의 취지를 잘 살린 결정”이라고 평가한 뒤 “앞으로 AI 인프라를 구축해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해 새 사업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울산시도 지난 2011년부터 추진 중인 외곽순환고속도로와 2003년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공공병원 설립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으로 확정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울산과 함께 전국에서 유일하게 2개 사업을 예타 면제에 포함시킨 전북 역시 최대 성과를 거뒀다는 평이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경기 북부의 포천 지역주민들은 이번 예타 면제 소식에 환호했다. 포천시는 여의도 면적(8.4㎢) 2.3배인 육군 승진훈련장을 비롯해 1.6배인 미 8군 종합훈련장(영평사격장) 등 군부대 사격장과 훈련장이 9곳에 달하는 등 65여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한 지역에 대한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 7호선 포천 연장사업을 예타면제 대상 사업 선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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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인천시 “대국민 사기극”…수도권 역차별 논란 확산에 혈세 낭비 우려도
반면 경기 수원시 등 이번 예타 면제에서 탈락한 지역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긴급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동안 수원시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신분당선 연장사업은 이번 예타 면제에서 제외됐다. 이날 염태영 수원시장은 정부 발표 직후 청와대를 방문해 복기왕 정무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이 사업이 제외된 데 따른 시민들의 성난 민심을 전했다.
이어 정부를 상대로 신분당선 연장구간에 대한 구체적 실행 로드맵 제시를 요구했다. 염 시장은 “신분당선 예타 면제는 국가균형발전 기조와 연관성도 분명하지 않다”며 “‘신분당선연장사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 사업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며 반발했다.
인천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건설사업이 제외되면서 송도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계속될 전망이다. 송도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은 “정부의 예타 면제 발표에서 GTX B 제외는 명백한 인천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인천을 교통 홀대하고 들러리로 세운 것에 항의해야 한다”고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예타 면제를 두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역차별 논란이 확산 중인 가운데 국가재정의 부실 위험성을 지적하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대형 신규사업에 신중하게 착수할 수 있게 하고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예타 조사는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이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기부양만을 목표로 예타 조사를 면제한다면 4대강이나 경인운하 사업처럼 국민 혈세 낭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 관련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환경회의도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핑계로 토건사업 확대를 위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려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