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임원 200여명 짐 쌌다…창업공신도 아웃

롯데·신세계·현대百, 정기인사서 전체 임원수 줄이거나 유지
퇴직 늘고 승진은 줄어…코로나發 경영 악화에 순혈주의도 '흔들'
대부분 슬림화 나서 퇴사 후 재취업도 만만치 않을 듯
  • 등록 2020-12-01 오후 7:58:07

    수정 2020-12-01 오후 9:23:42

[이데일리 함지현 윤정훈 김무연 기자]유통업체 임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위기감에 휩싸인 유통업체들이 혁신을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원들은 조직 변화나 통폐합 때마다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외부 수혈’이라는 명목 하에 역량 있는 외부 전문가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하는 점도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

롯데그룹의 사기(사진=연합뉴스)
창업 공신·공채 임원도 아웃…순혈주의 타파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말 인사 결과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주요 유통 그룹의 임원 숫자는 대부분 감소했다. 승진은 모든 곳이 지난해보다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이날 인사를 발표한 신세계백화점은 전체 임원 중 20% 가량이 퇴임했다. 퇴임한 자리에 대한 승진이 이뤄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60여 명의 임원 중 약 5%의 자리가 줄어들었다. 특히 본부장급 임원의 70% 이상을 교체하는 등 조직 전반에 큰 변화를 줬다.

대표이사급 인사는 변화폭이 크지 않았다. 신세계디에프 대표이사에 유신열 신세계 영업본부장 부사장을, 밴처캐피탈(CVC) 사업을 추진하는 신설 법인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이사에 문성욱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겸직)를 내정한 정도다.

유신열 신임 신세계디에프 대표이사(사진 왼쪽)와 문성욱 신임 시그나이트파트너스(신세계톰보이 겸직) 대표이사.(사진=신세계)
롯데는 전체 임원 600명 중 30%가 자리를 비웠고 이마트 역시 100여 명의 임원 중 10%를 감축했다. 승진자 수도 많게는 두자릿수 감소했다.

최근 이어진 경영 악화의 결과다. 어려운 상황을 맞아 성과주의 인사가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안 그래도 온라인 등에 치여 고전을 면치 못하던 ‘유통 공룡’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위기가 가속했다.

이는 곧 뿌리 깊게 자리 잡아온 순혈주의의 입지까지 흔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그는 조직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986년 롯데제과에 입사해서 35년간 롯데 밥을 먹은 조경수 롯데푸드 신임대표, 6년간 현대홈쇼핑을 이끌었던 강찬석 대표도 올해 인사에서 물러났다.

대신 새로운 전문가들이 임원의 자리를 꿰찼다. 롯데쇼핑은 지난 10월 회사의 헤드쿼터(HQ·본부) 기획전략본부장(상무)에 정경운 전 동아ST 경영기획실장을 선임했다. 유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20~30년차 베테랑을 제치고 유통 경험이 적은 정 상무를 발탁한 것은 이례적이다.

GS리테일과 합병을 발표한 GS홈쇼핑도 경영전략본부장(전무)으로 삼성전자, 베인컴퍼니, 이베이코리아, 삼성물산 등을 거친 박솔잎 전무를 수혈했다. 신세계도 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 재무·관리담당에 HDC신라면세점 출신의 이유석 상무를 영입했다.

이 같은 외부 인재의 영입은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라는 인사권자의 기대하에 이뤄진다. 동시에 자리를 놓고 눈치싸움을 벌여야 하는 임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기도 하다.

주요 유통업체 임원수 변화(그래픽=이미나 기자)
옷 벗은 임원들, 코로나 찬바람에 갈 곳도 없어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 전반이 얼어붙은 탓에 퇴직 임원이 새로운 일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통 대기업들은 퇴직 임원을 예우 차원에서 자문 또는 고문역으로 초빙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전임대표에게 2년, 그 밖의 임원에게 1년 동안 자문·고문역을 맡기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사장급은 상근 2년, 부사장은 상근 1년, 전무 이하 임원은 비상근 1년 간 자문·고문으로 기용한다. 신세계그룹 또한 상무 이상 임원에게 2년 간 자문·고문 역할을 준다.

자문 역을 맡은 동안 다른 기업에 재취업 등을 모색해야 하지만, 유통업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보니 이 또한 여의치 않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보통 퇴직 임원들은 자문 또는 고문 역할을 수행하다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해 자리를 옮기는 게 일반적”이라며 “상황이 어렵더라도 퇴직 임원 예우를 낮추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통 대기업 출신 임원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로 옮겨 중역을 맡거나 대표급으로 영전해 회사를 쇄신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난 4월 교촌에프앤비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영입돼 회사의 상장에 일조한 소진세 전(前)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이 대표적이다.

다만 과거처럼 퇴직 임원들의 재취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 전반적으로 조직의 슬림화와 효율화를 위해 임원 감축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당 조직원 수도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 유니코써치가 2020년 100대 기업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00대 기업 임원 1명 당 직원 수는 128.8명으로 나타났다. 2011년에는 105.2명당 1명의 임원이 있었다. 임원직을 수행하기가 10년 사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는 “50대 임원의 경우 원래 있던 조직보다 규모가 작거나 업종 연관 협력사 말고는 재취업이 쉽지 않다”며 “창업을 준비하거나 부동산 임대사업 등을 알아보는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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