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재림…유가·원화·주가 일제히 2009년 수준으로

환율 급등하며 韓증시 亞증시서 가장 큰 폭락 기록
달러 유동성 경색 우려에 외국인 자금 빠져나가
채권·유가마저 약세 띠며 금융시장 위기감 부추겨
"코로나19 종식돼야 안정 찾아…더 강한 정책도 필요"
  • 등록 2020-03-19 오후 5:22:24

    수정 2020-03-19 오후 6:20:11

19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경제 지수를 모니터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0.0원 오른 1285.7원에 마감했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33.56포인트 내린 1457.64에 장을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금융시장의 시곗바늘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로 돌아갔다. 주가와 원·달러 환율은 2009년 수준으로 돌아갔고, 국제유가는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수준까지 폭락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원·달러 환율 1250선이 뚫리면서 불안심리가 더 증폭돼 증시는 더 크게 폭락했다.

증권가에선 달러 유동성이 마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에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안전자산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돈을 인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 당국이 강력한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상승폭을 진정시키는 한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빨리 멎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환율 폭등에 증시 ‘폭삭’…亞 증시서 최대낙폭

19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8.39% 떨어진 1457.64에 장을 마쳤다. 이는 2009년 7월 17일(1440.10)이후 최저 수준이다. 또 코스닥 지수 역시 이날 11.71% 폭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코스닥 양 시장에서 약 일주일 만에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동시 발동됐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8년 5개월 만에 1000조원을 하회했다.

주가 폭락을 부채질 한 건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40원 급등한 1285.7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였던 지난 2009년 7월 14일(1293원) 이후 약 11년 만에 높은 수치다. 장중엔 심리적 저항선인 1250원을 훌쩍 넘어서 1290원대를 넘기기도 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징후들이 나오면서 원화가치가 크게 절하되고 외국인도 한국 시장에서 주식을 팔고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의 경우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 놓고는 있지만 교역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크다 보니 외화 수요가 큰 데다, 최근엔 국내 금융업계의 해외투자 활성화에 환율 노출도가 커서 환율이 민감하게 움직이고 이로 인해 주가가 크게 출렁이곤 한다.

심지어 이날 시장에는 해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이 지수 하락으로 줄줄이 마진콜(담보부족)이 발생, 이를 헷지하고 있던 해외지수선물을 더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이를 매수하기 위한 달러가 더 필요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뛰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환율 급등으로 여타 시장 대비 한국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인출 규모도 눈에 띄게 큰 수준을 나타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8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외국인은 74억 7116만달러를 빼 갔다. 같은 기간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선 각각 17억 5600만달러, 2억 8077만달러를 빼간 것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규모다. 다만 시가총액 대비 반도체 비중이 큰 대만의 경우 최근 들어 반도체 수요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며 같은 기간 98억 1521만달러가 유출되며 한국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유출이 이뤄졌다.

이를 반영하듯 코스피 지수는 다른 글로벌 지수 대비 더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전날 대비 0.98% 내렸고, 일본 니케이 지수는 1.04% 내리며 장을 마쳤다. 대만 자취안 지수는 전날 대비 5.83% 떨어졌다.

채권·유가마저 약세…“더 강한 정책·코로나19 종식 필요”

현금 수요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채권 가격마저 약세를 보였다. 이날 오후 한국 국고채 3년물은 전일 대비 0.143% 오른 연 1.193%를 기록했다(채권가격은 하락). 금융위기에 준하는 불안심리가 극단적인 현금화를 이끌면서 안전시장인 국채시장도 흔들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와중에 유가마저 폭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대비 배럴당 24.4% 폭락한 20.37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는 2002년 2월 이후 18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시장의 모든 지표가 글로벌 금융위기, 혹은 그 이전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패닉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는 게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한 글로벌 통화당국과 각국 정부들이 매일같이 통화·재정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불안은 가시질 않고 있는 까닭이다.

증권가에선 유동성 경색을 완화시킬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환당국이 강력한 시장개입을 통해서 환율 상승폭을 진정사킬 필요가 있다”며 “현재 주가·금리·환율의 위기감은 모두 코로나19 확산에서 비롯되는 만큼 미국과 유로존에서 진정되고 치료제가 나온다는 뉴스가 나와야 근본적으로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팀장은 “금융위기 당시엔 글로벌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족이 문제였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통해 문제 원인을 해소했지만 지금은 유동성 고갈이 증상일 뿐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및 금융기관 디폴트 우려”라며 “통화 당국이나 정부의 정책들은 이러한 불안 증상을 완화시킬 뿐 근본적으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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