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황정희 작가] 꽃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행복을 느낀다. 선물과도 같은 자연을 함께 누리고 싶다. 꽃길을 같이 걷는 길동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여행지는 축제장일 수도 있고 때론 호젓한 숲과 계곡이다. 그곳이 어디이든 꽃길을 함께 걷기 위해 떠나보자.
△ 깊은 산에 노란 융단이 깔린다 ‘한계령풀’
봄은 소리 없이 왔다 가버린다. 눈꺼풀을 깜박였더니 이미 봄은 달아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도심을 걷던 나는 어느 순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비 오고 바람 불더니 벚꽃 잎이 후두두 꽃비처럼 떨어져 버린다. 짧은 며칠의 봄이다.
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산으로 발길을 향한다. 멀리서 바라본 산은 4월이 가장 예쁘다. 연두색으로 물이 오른 나무들은 종류에 따라 새순의 색깔이 다르다. 그들이 어우러져 그리는 봄은 아련히 피어나는 안개 같기도 하고 색깔 있는 솜사탕이 몽글몽글 산을 뒤덮는 듯하다. 산 아래 사람이 찾지 않을 것 같은 숲에서는 봄꽃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서울보다 한참 추운 강원도의 봄은 훨씬 더디고 길다.
4월의 꽃은 샛노랗게 피는 한계령풀이다. 무리지어 피어 봄의 환희를 노래하기에 보는 이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꽃이다.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양희은이 불렀던 노래 ‘한계령’이 떠오른다.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어 한계령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서로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이른 봄에 바람처럼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한계령풀은 꽃을 제법 안다는 사람들도 쉽게 보기 어려운 꽃이다. 한국 특산종이며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아주 드물 거로 생각하지만 뜻밖에 백두대간 자락에 꽤 많은 수의 한계령풀이 자라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사면 전체가 한계령풀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군락을 이룬다. 4월에 그런 꽃밭을 만나면 봄이 주는 선물을 받는 것 같다. 샛노랗게 무리 지어 피는 한계령풀은 노란 융단을 연상시킨다. 삭막한 겨울 숲을 두드리는 설렘을 실은 봄바람이다. 갓 피어났을 때는 곧추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꽃송이가 버거운지 고개를 수그린다. 애석하게도 남쪽에서는 볼 수 없다. 중부이북의 산에서만 자란다.
한계령풀을 보려면 함백산, 태백산, 점봉산 등 강원도 고산을 올라야 한다. 가끔 홍천의 나지막한 야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들꽃을 보기 위해 들로, 산으로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니라면 접근성이 수월한 태백산이 한계령풀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산행지다. 4월 중순 이후 유일사 입구 주차장에서 1시간 정도 오르면 한계령풀이 경사진 사면에 가득 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노란색 한계령풀뿐만 아니라 하늘색 날개현호색과 자주색 얼레지도 함께 피어 꽃방석이 따로 없다. 4월에 태백산에 서면 아기자기한 봄꽃의 사랑스러움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봄날의 태백산 산행은 눈과 마음이 즐거운 산 꽃길 걷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