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입장에선 조 회장을 컨트롤하기 위한 확실한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반대로 조 회장은 확실한 경영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자칫 지분을 포함한 모든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원태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부에 임의처분권
조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지분은 한진칼 보유주식 6.52%다. 이 지분으로 조 회장은 한진그룹을 지배한다. 조 회장은 산은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8000억원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자신이 가진 지분 전부를 담보로 내놓았다. 그런데 산은은 담보로 받은 조 회장 지분을 언제든 임의처분할 수 있는 조항을 계약조건에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성과가 떨어지는 경우 담보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 담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하거나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등의 특수한 조건에만 지분을 처분할 수 있는 게 일반적인 계약 조건”이라며 “경영 성과에 따른 임의처분권을 확보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계약”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산은이 조 회장의 지분을 팔고 퇴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물론 조 회장 지분 약 385만 중 326만주(84.32%)는 이미 다른 금융기관과 국세청에 담보로 제공돼 있다. 하지만, 산은이 대출을 갚아주는 방식으로 담보권을 해제하면 얼마든지 담보로 받은 한진칼 지분을 처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조 회장 입장에선 경영능력을 발휘해 통합을 안정적으로 이끈다면 굉장한 기회가 되겠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면 한진칼 지분을 강제 처분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면서 “조 회장은 칼끝 위에 선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칼 8000억원 투입 왜?
한진칼은 이 돈으로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최대주주로서 약 7317억원을 투입한다. 지난 9월 기준 한진칼의 대한항공 보유지분은 29.27%다. 대한항공은 이 유상증자 자금으로 아시아나를 1조8000억원(1조5000억원 규모 신주 인수 및 3000억원 영구채 인수)에 인수해 최대주주(63.9%)가 된다.
산은에선 대한항공에 직접 자금을 투입할 경우 한진칼 지분이 희석돼 법적 기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또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현재의 구도가 대규모 민간자금의 조달에 효율적이라고 봤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대한항공 유상증자의 내년 초 시행으로 시장자금을 조기 조달해 정책자금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내년 3월 24일 신주를 상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무엇보다 국책은행이 경영권 분쟁기업 지분을 직접 갖는 건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조 회장 측 지분이 41.4%로 3자 연합(46.71%)에 밀리고 있어 더욱 그렇다.
산은은 한진칼의 3자배정 유상증자 자금을 다음 달 2일 납입한다. 취득하게 될 10.66% 지분은 다음 달 22일 상장된다. 앞서 한진칼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지난해 12월 26일 기준 주주명부를 기준으로 의결권을 부여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산은은 내년 3월 한진칼 정기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전망이다. 3자연합을 이끄는 KCGI는 “국민 혈세를 활용한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숨겨진 본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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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경영개입 필요 판단
산은이 조 회장의 담보 지분에 대해 임의처분권을 확보 이외에도 7가지 조건을 제시한 것도 특혜 의혹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산은이 지명한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고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전협의 및 동의를 받아야 한다. 더이상 ‘땅콩회항’ 등 사회적 물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독립기구인 윤리경영위원회도 운영한다. 위원회는 총 5~7인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을 포함한 5명 이상이 외부 인원으로 꾸려질 계획이다. 총수 일가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와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은 윤리경영에 적극 협조하고 항공 관련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또 경영평가위원회가 매년 대한항공의 경영을 평가해 실적이 저조하면 경영진에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채권단과 정부로선 더 확실한 경영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과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에서 자금부담을 하지 않는다. KCGI는 이를 두고 ‘무자본 M&A’라고 할 정도다. 그런 만큼 채권단이 실권을 가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산은은 조 회장 역시 실적이 좋지 못하면 해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이번 안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구도와 같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칼에 자금을 넣은 건 한진칼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며 “조 회장이 승부를 건 것 같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18일 32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산은과 체결한 투자합의서에 대해 “지금 완전히 계약이 끝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기 곤란하다”면서 “제가 앞으로 맞춰야 되는 기준들이 있고 (그런 것과 관련해) 경영평가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