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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ㆍ달러 환율 40원 급등…자금유출 가속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40.0원 오른 1285.70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290원선에 근접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지난 2009년 7월14일(1293.0원) 이후 최고치다. 장중엔 1296원까지 오르며 1300원도 위협했다. 상승폭도 2009년 3월30일(42.5원) 이후 가장 컸다.
지난 11일 1193원에 거래됐던 원ㆍ달러 환율은 불과 6거래일만에 92.7원이나 뛰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공포에 휩싸이면서 글로벌 전반적으로 달러 현금 보유 심리가 거세지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18일(현지시간) 3년여만에 최고치인 100을 돌파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고, 특히 아시아 통화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만큼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됐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250원이 뚫리면서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상대적으로 주식시장 등에 비해 안정적으로 움직였던 것은 외국인 주식 매도자금이 국내에 머물렀단 뜻”이라며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환차손을 우려한 외인 자금의 이탈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산가격 폭락으로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을 메우려는 달러 수요도 가세하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 미 국채가격이 하락하고 일본 엔화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며 “이는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따라 현금, 즉 달러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시장까지 달러 자금 말랐다
최근 환율 급등은 지난 12일 이후 스왑시장에 국한해 나타난 달러 경색이 외환시장 전반에 옮겨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지난 18일 스왑시장 달러 유동성 공급을 위해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확대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달러 경색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직접 외환시장 달러 공급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매수호가와 매도호가가 장중 한 때 50원 이상 벌어졌다는 것은 국내 달러 부족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외화를 아껴둘 필요도 있지만, 시장의 급격한 쏠림은 오히려 시장 불안을 키우는 만큼 정부가 직접 달러 공급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채권시장마저 외국인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이 대규모 선물매도에 나서면서 국고채 금리는 3년물이 전일 대비 14.3bp(1bp=0.01%포인트) 상승한 1.193%를 기록했다. 채권금리가 상승했다는 것은 채권값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아직 현물 채권은 매수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달러 품귀 현상 장기화 전망으로 자칫 현물시장에서도 이탈이 발생하면 달러 가뭄은 겉잡을 수 없어진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17년 이후 채권을 매입한 외국인들은 현재 12% 이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현물 이탈이 나타날 경우 외국인의 원화 자산 매도세는 가속페달을 밟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내 원화 자산에 대한 외국인 자금유출이 확대되고 달러 부족이 지속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