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됐던 ‘성락원’이 지정 가치 적합성 논란에 명승 지위를 잃게 됐다. 2008년 명승 지정 이후 12년 만이다.
| 문화재 부실 고증 논란에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됐던 성락원이 12년만에 지위를 잃게 됐다.(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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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24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를 개최해 명승 제35호 ‘성락원’을 지정 해제하고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하는 권고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락원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다는 이유로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이후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이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성락원이라는 이름도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이라는 지적 등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언론에서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가 논란이 된 후 지정 과정상의 일부 문제점을 인정하고 역사성 등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재검토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 6~7월 한 달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성락원 관련 문헌·자료들을 전면 조사했고 자문회의 3차례, 공개 토론회 한 차례, 법률자문 2차례를 거쳤다.
조사결과 당초 지정사유였던 조성자로 알려진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은 인물로 확인됐고, 황윤명의 ‘춘파유고’(황윤명의 차손 안호영이 호아윤명의 시문을 모아 발간한 유고집) 오횡묵의 ‘총쇄록’(오횡묵이 자신이 관리로 있던 곳의 현황 등을 일기, 시문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 등의 문헌기록에 따를 때, 조선 고종 당시 내관이자 문인인 황윤명(黃允明, 1844~1916)이 조성자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갑신정변(1884) 당시 명성황후가 황윤명의 별서를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기록(일편단충(一片丹忠)의 김규복 발문,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라, 이 별서가 1884년 이전에 조성된 것도 확인됐다.
다만 문화재청은 이 공간이 조선 고종대 내관 황윤명이 별서로 조성하기 이전에도 경승지(경치가 좋은 곳)로 널리 이용됐고,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피난처로 사용되는 등의 역사적 가치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다양한 전통정원요소들이 주변 환경과 잘 조화돼 있어 경관적 가치 또한 뛰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시대 민가정원으로서의 학술적 가치 등도 인정돼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한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성락원의 지정해제와 서울 성북동 별서의 지정에 관한 사항을 30일간 관보에 예고해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심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