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하소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개월째 ‘금융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은행은 과거 ‘관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림자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한쪽에선 더 어마어마한 그림자 규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계부채 관리대책’다.
금융위는 내년부터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때 원칙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매달 갚아나가는 방식의 ‘분할상환’을 정착시키겠다고 지난 7월 밝혔다. 금융위의 이러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결국 은행들의 모임인 ‘전국은행연합회’였다.
은행연합회는 은행들을 끌어모아 일명 ‘여신(주택담보대출) 심사 선진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각각 60%를 초과하는 경우 전체 대출액을 분할상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위의 은행 ‘팔 비틀기용’으로 은행연합회를 내세웠지만 담합 논란에 휩싸일까 오히려 은행들은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여신심사를 할 때마다 ‘담합의 악몽’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주장이다.
은행연합회가 “주택담보대출 취급에서 일률적인 기준을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은행들은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보이지 않는 강제성을 이길 은행은 없다는 것이다.
당국이 대출 시스템에 관여하면 은행의 이익감소는 둘째 치더라도 담합의 공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규제개혁에 ‘반신반의’하는 눈치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것이란 우려 탓이다.
금융권 고위 인사의 말을 곱씹어 볼 시기다. “금융은 노동이나 교육처럼 개혁한다고 해서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지. 곧바로 사람들이 열광하고 눈에 보이게 하면 그건 개혁이 아니고 오히려 규제야. 수수료를 내리는 게 금융개혁의 본질처럼 여겨지고 청년 일자리 창출에 일조하는 게 금융개혁의 할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이미 개혁은 물 건너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