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를 둘러싼 견해차가 이유로 꼽히지만, 창업주들의 견제와 최근 출렁이는 시장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PEF 운용사 주요 보직을 꿰차며 기대감을 높이던 자본시장 내 K파워가 다소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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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칼라일그룹은 지난 8일 이규성 CEO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 CEO의 계약이 올해 말 종료함에 따라 이사회와 이 CEO는 새로운 CEO 발굴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2018년 공동대표에 오른 지 4년여 만이자 단독 CEO를 수행한 지 2년 만이다.
표면적 이유로는 연봉 책정을 둘러싼 이견이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 대표는 5년간 최대 3억달러(3929억원) 상당의 급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칼라일 공동 설립자인 빌 콘 웨이와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대니얼 다니엘로가 이를 거부하자 전격 사임했다고 전했다.
언뜻 천문학적인 연봉을 요구했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 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공동 CEO인 조셉 배(Joseph Y. Bae·한국명 배용범)의 지난해 연봉이 5억5964만달러(6815억원·인센티브 포함) 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제안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 CEO의 사임이 업계에서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 해 수천억원 연봉을 받다가도 하루아침에 회사를 등질 수 있는 냉정한 자본시장의 한 장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업주들의 생각은 달랐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칼라일 공동 창업주들은 이 CEO의 급여 인상에 대해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CEO직을 더 맡길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로이터 통신은 월가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창업주들은 칼라일의 성장세가 예상한 것보다 더뎠다고 평가했으며, 더 크고 다양한 성장을 도모해야 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반면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하며 우군을 확보하던 이 CEO의 회사 내 장악을 우려한 창업자들의 견제였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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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CEO 입장에서는 페이컷(연봉삭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창업주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향후 회사를 옮기거나 자신의 운용사를 차리는 데도 현명하지 못한 결정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이 CEO의 사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끌어올리던 K파워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칼라일은 이 CEO 취임 이후 국내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2020년 KB금융지주에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월엔 카카오모빌리티에 약 2200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투썸플레이스를 약 1조원에 인수하며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올해 초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6113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기대감이 사라지며 유동성이 마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계 조셉 배가 이끄는 KKR이 총 1조원에 달하는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산업가스 생산설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기한 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이달 협상이 결렬되기도 했다.
급변한 투자 환경에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굳어지며 공격적인 투자 위임이 쉽지 않아졌다는 얘기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금리와 원자재 가격 인상이라는 이벤트에 위기라고 판단한 PEF 운용사들이 투자 기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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