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 8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 합의 복원에 있어 이란은 급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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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이란이 금속 우라늄 제조를 시작했다. 이란은 연구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핵무기 개발에 쓰일 가능성이 높아 2015년 서방 국가들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한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작성한 기밀 보고서를 입수 “이란이 4~5개월 안으로 이스파한에 있는 시설에 금속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할 장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20%로 농축한 금속 우라늄을 제조해 테헤란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에 첨단 연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IAEA 대사도 같은 날 트위터에 “이란 민간 연구용 원자로를 위한 새로운 연료 개발을 허용하겠다”며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WSJ은 “금속 우라늄의 경우 순도 90%로 농축하면 핵폭발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장치의 핵심부품으로 사용돼 핵무기에 쓰일 수 있다”며 “이번 개발로 이란은 민간 용도와 핵무기 개발 사이 경계선을 넘는 데 한층 가까워졌다”고 평했다.
이란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미 언론들은 다양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선 2015년 독일·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미국과 맺었던 핵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은 당시 15년간 우라늄을 3.67% 이상 농축하지 않을 뿐더러, 우라늄 농축 목적의 시설도 세우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중단됐던 이란 제재를 재개하자, 이란은 보란 듯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말 이란의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58)가 암살된 이후 이란 의회는 핵 활동 확대에 근거가 되는 법안들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최대 20%에 달하는 순도로 우라늄을 농축시킬 수 있도록 했고, IAEA의 사찰 중단을 요구하는 법안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이란은 파크리자데 암살 배후로 숙적인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그를 살해해 이란 핵개발 저지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 지난해 11월 이란 수도 테헤란 도로에서 암살된 ‘이란 핵과학의 아버지’ 모센 파크리자데(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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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이란은 최근 미국이 경제 제재를 철회하지 않으면 5개월 안에 금속 우라늄 생산시설을 운영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난 8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 합의 복원에 있어 이란은 급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당선인이 내세운 이란 핵합의 복귀 등 대이란 정책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협정에 복귀해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WSJ은 “지난 2년 간의 제재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이란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며 향후 재협상이 바이든 당선인에겐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미국과 동맹인 이스라엘이 이란에 적대적 관계인 만큼 합의 복원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도 바이든 행정부에는 압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신문은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