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방사광가속기 부지선정 소감을 전했다.
지난 2008년 중이온가속기와 방사광가속기를 놓고 의견이 대립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구축할 가속기 유형을 놓고 중이온가속기와 방사광가속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엇갈린 것이다. 포항방사광가속기 리모델링과 중이온가속기 건설로 일단락됐지만, 의견은 분분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 단장은 줄곧 방사광가속기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책연구용역부터 사업 기획 전반에 참여해 왔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재추진되면서 부지선정까지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는 어렵게 가속기 구축이 추진된 만큼 시설을 제대로 구축해 과학산업 인력 선순환 체계를 마련하고,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 계획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면 오는 2028년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할 수 있다. 지난 1994년 구축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이때쯤이면 설계수명인 40년 종료 시점에 임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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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광가속기는 가속된 전자가 운동방향이 변할 때 방출하는 고속의 빛을 활용해 초미세 세계를 분석하는 장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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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에 ‘다목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포항가속기연구소가 포항공과대학교 중심으로 운영돼 대학에서 시설을 이용하기 쉬웠다면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산업체들이 쉽게 시설에 접근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산업체 입장에서는 배터리에 필요한 전극물질 개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 분석을 통한 신약 개발, 타이어 소재 분석 등에 활용해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세계 최대 방사광가속기인 SPring-8을 비롯해 9기의 방사광가속기를 운영중이며, 3기의 방사광가속기를 추가로 구축할 예정이다. 도요타, 닛산, 스미모토 등 주요 기업들이 방사광가속기에 자체 빔라인을 설치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포함한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이 단장은 “일본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핵심 기술개발에 활용해 왔다”며 “국내에서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물질을 개발,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인력 선순환 체계 구축 필요...지속적 지원도 이뤄져야
국내 이공계 석박사 숫자는 증가하는 반면 대학, 연구소 배정인원은 감소함에 따라 고용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중·고등학생들이 이공계 지원을 기피하고, 기존 연구인력은 노령화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에는 300명 정규직 근무자와 계약직 연구원을 포함해 1000여명이 상주할 전망이다. 설계부터 건설, 운영까지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한다. 특히 매년 700명 규모의 박사급 인력들이 이 과정에 참여해 시설에서 실습하며 가속기 원리를 이해하고, 실험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학위 이후에는 유학을 통해 성장하거나 국내에 남아 핵심인재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현 세대 은퇴와 이들의 성장이 맞물려 인력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 구축 10년 후에는 5년씩 다시 새로운 가속기 기획과 건설을 추진해 새로운 인력들을 배치하면 연구부터 교육, 채용까지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단장은 향후 방사광가속기 건설·운영 과정에서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4세대 방사광가속기 ‘SIRIUS’를 건설했지만, 최근 과학예산을 삭감하며 제대로 운영하고 있지 못하는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방사광가속기 운영을 위한 재정과 인력확보를 정부가 지원하면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돼 사용자들이 전국에서 2시간 내외로 시설에 접근하고, 국내 주요 기업들도 자체 빔라인을 구축해 경쟁력 강화에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