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넥에 토크콘서트…격식 풀어놓은 금융위의 ‘순회공연’

창업허브서 검단공단, 청년일자리센터…잇단 현지 방문
자본시장 혁신과제 취지 살려 업계 관계자와 소통 시도
가감 없는 비판에 귀 기울이기도…정책 밑거름 될까
  • 등록 2019-01-30 오후 3:51:55

    수정 2019-01-30 오후 3:51:55

안창국(가운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이 30일 서울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인사말하고 있다.(사진=이명철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오늘 자리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온 것 같다. 아침에 나오기 전에 티셔츠를 입어봤는데 어울리지 않더라.”

30일 서울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의 토크 콘서트, 정장을 입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겸연쩍은(?) 한마디에 경직됐던 장내 분위기는 일순 화기애애해졌다. 최 위원장을 앞에 두고 사회자로 나선 한 금융위 과장은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으로 편안하게 토론을 이끌어갔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일명 우문현답을 실천하는 중일까. 금융위의 잇단 현장 행보가 주목 받고 있다.

혁신기업 성장에 방점…“가자 현장으로”

이번 정부 들어 주요 기관들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그림’ 만들기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도보다리 산책은 백미로 꼽힌다. 총리를 비롯해 주요 부처 장관들도 일선 현장을 돌아다니며 현지와 소통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금융위도 예외가 아니다. 최종구 위원장 체제에서 유독 현장 방문이 잦다. 특히 올해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 혁신과제를 잇달아 현장에서 발표하고 있다.

첫 후속조치를 내놓은 지난 21일에는 증권·자산운용사 대표를 대동해 경기도 검단공단의 비상장 기업 본사를 찾아갔다. 기업 주요 제품을 둘러보고 난 후 자그마한 회의실에 모여 개인 전문투자자 진입요건 개선과 중소기업금융 전문 투자중개회사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도 코넥스 상장사 자금 조달을 쉽게 하고 완화된 회계 감독을 적용하는 등 코넥스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 장소인 청년일자리센터는 증권사와 벤처캐피탈(VC) 관계자, 코넥스 상장사 직원 등이 자리했다. 통상 주요 정책 공개 장소가 브리핑실 등으로 제한적인 관례를 비출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는 올해 금융위의 정책 취지가 중소 혁신기업 성장을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에 있다는 데 기인한다는 해석이다. 창업 시기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벤처 투자자 등이 주요 정책 대상인 만큼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실제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코넥스 상장사 재무팀 담당자는 “현재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코스닥시장 상장을 준비 중인데 코넥스시장 거래 부진에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날 발표한 활성화 대책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최 위원장의 강직한 외형과는 대조를 이루는 드레스 코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달 16일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핀테크 간담회에는 회색 후드 재킷을 입고 참석해 시장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토크 콘서트 역시 최 위원장의 옷차림이 관심을 모았지만 오후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정장을 입고 왔다는 게 금융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종구(가운데) 금융위원장이 30일 서울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이명철 기자)
◇ 최종구 “냉정한 평가…기대 못 미침 깨달아”


모든 현장 탐방이 매끄럽게 이뤄지진 않았다. 21일 후속조치 발표 당시에는 현장 방문 기업 선정과 참석한 금융투자업계 대표단 선정이 비상장사 자금 조달 지원과 중소기업금융이라는 정책 취지에 부합한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토크 콘서트도 덕담만 주고받는 자리는 아니었다. 국내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을 앞에 두고도 패널들은 물론 청중 사이에서도 금융당국 정책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성인 프리미어파트너스 대표는 “VC가 투자한 기업의 기업공개까지(IPO) 기간이 평균 16년(2017년 기준) 정도 되는데 펀드 기간은 대부분 10년이어서 멀리 보고 투자하기가 힘들다”며 “벤처 투자 금액은 증가하지만 신규 상장이 줄고 IPO 기간이 장기화되면 결과적으로 벤처 생태계는 선순환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자금 회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코넥스시장을 개편해 수요와 공급을 늘려야 활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재광 SBI인베스트먼트 이사는 현재 코넥스시장을 ‘인공호흡이 필요한 죽기 일보 직전’으로 표현하며 일회성 정책을 지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코넥스 활성화 방안은 이미 전임 금융위원장 시절에도 발표한 적이 있다”며 “정책 발표에도 (시장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책이 현실에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정 대표는 “코넥스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장외시장을 코스닥으로 바꿨던 당시 만큼이나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규시장인 코넥스도 거래소 시장이 갖는 모든 세제·거래 시스템과 혜택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코넥스협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문 툴젠 대표도 “현재 코넥스시장의 정체성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바이오든 제조든 구분하지 말고 코넥스에서 시가총액 상위 1~3위는 그냥 (코스닥시장으로) 보내는 것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넥스 지정자문인 역할을 주로 맡고 있는 IBK투자증권의 이시우 과장은 정책의 빠른 제도 도입을 주문했다. 그는 “조금 더 (규제를) 완화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욕심도 있지만 이번 활성화 방안은 증권사가 바라던 방향”이라며 “기업계속성심사 완화나 지정감사 제도 개선 등이 정책에 잘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시간 이상 진행된 토론회와 질의응답 과정을 모두 지켜본 최 위원장은 겸허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보통 ‘막말로 하자면’이라고 하고 나서도 실제 막말을 하는 경우는 없는데 오늘 토론자는 진짜 말을 해줬다”고 농담을 건네고서는 “(발언을) 안 참고 다 해줘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의 뜻을 나타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의 실시간 피드백이 제도 수립에 도움이 될까. 결국 남은 추진 과정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최 위원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냉정한 평가에 (코넥스 활성화 방안이)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닌 혁신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창의적인 접근 주문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앞으로 방안 시행까지 더 적극적인 안이 있을지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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