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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부가 내놓은 개방형 금융 결제망(오픈뱅킹)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은행과 핀테크(금융+IT) 기업은 금융플랫폼을 놓고 무한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대형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 중에서 기득권에 안주한 금융회사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은 곳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과 핀테크의 무한경쟁 시대 돌입
개방형 금융결제망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은행이다. 은행은 종전까지 핀테크 업체에 은행결제망을 제공하는 대가로 건당 400원에서 500원까지 받았는데 앞으로는 10분의 1수준으로 확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작년 은행권이 간편결제 사업자에게서 받은 수수료수익이 약 1000억원 안팎이다. 결제 규모가 유지된다면 수익이 100억원 수준으로 확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실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 은행권 입장에서 큰돈은 아니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기득권에 안주했던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이같은 변화를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있다. 이날 공개된 오픈뱅킹의 핵심은 핀테크 결제사업자가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은행 결제망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은행끼리도 결제망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자기고객 결제나 송금처리만 해왔는데 앞으로는 특정은행의 앱(응용프로그램)을 깔면 다른 은행의 입출금이나 송금, 결제가 가능하게 끔 바뀐다.
가령 농협은행 고객이 국민은행의 앱인 ‘리브’가 편리하다면 ‘리브’를 통해 농협 계좌의 자금으로 송금, 결제를 다 할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춘 앱을 만들면 사실상 전 국민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좌우 날개단 핀테크‥신용카드·중소밴사는 울상
그런데 이 비용을 앞으로 10분의 1까지 낮추겠다는 게 금융위의 구상이다. 비용 부담이 확 줄어드는 대신 대고객 서비스 혁신에 주력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50만원 한도 내에서 소액 후불 결제서비스를 하고 간편결제 이용·충전한도도 500만원으로 확 올라가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간편결제 업체들은 수수료가 낮아지면 은행과 정면승부를 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면서 “결국 아이디어와 대고객서비스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고위임원은 “기존 금융회사의 각각의 기능이 쪼개지는 상황이 본격화할 것 같다. 이럴 때 시장과 협업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디저털 비즈니스모델을 발굴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신용카드 회사들은 울상이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카드의 경쟁자인 간편결제 업계를 밀어주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1000조원대 결제 시장중 신용카드가 650조원, 체크카드가 170조원, 나머지는 현금이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는 간편결제 비중이 2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당장 경쟁이 격화할 체크카드 시장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소액후불서비스 많이 쓰게 되면 신용카드에도 큰 영향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디테일에서는 의견차‥국회 통과도 미지수
오픈뱅킹이 시장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의견도 많다. 우선 금융당국과 은행 등은 실무협의회를 통해 오픈뱅킹 도입을 위한 세부사항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별로 준비상황과 경쟁력에 차이가 있다 보니 각론에서는 이견이 많은 상황이다.
다른 시중은행의 임원은 “혁신이라는 취지는 공감해도 IT준비 상황이나 경쟁구도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며 “은행별로 입장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 보안과 시스템 안정성도 점검해봐야 할 대목이다.
또 입법 과정에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오픈뱅킹 법제도화와 새로운 전자금융업 도입 등은 모두 법개정사항이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각 당의 입장이 달라 계획대로 연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해집단의 반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당장 중소형 밴사와 신용카드 업계의 반발 기류가 강한 편이다.
한 금융기관의 임원은 “지금 금융위가 내놓은 방안 중 수수료 내리는 것 제외하면 구체적인 것은 내용이 없고 당장 소비자들이 얻는 이익도 찾기어렵다”면서 “실제 업계의 변화가 일어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