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릴린치는 지난달 말 한국 주식에 대한 대차서비스로 인한 내년도 수익 목표치를 0으로 하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차거래 서비스는 증권사가 일정 수수료를 받고 그 주식을 빌리고자 하는 차입자에게 대여하고 차입자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빌린 주식을 돌려주기로 약속하는 서비스다. 공매도 잔고 대량보유자 1위인 메릴린치는 한국 주식도 상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도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부서에서 대차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PBS의 주된 수입원이 실질적으로 대차와 스왑(교환)을 통해 나오는데, 대차서비스를 계속하려면 인력과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등 고정비가 많이 든다”며 “공매도가 금지된다면 굳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서비스를 하려 할까 의문”이라고 했다.
사실상 한국에서의 대차서비스 중단을 선언한 시점도 주목된다.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은 BNP파리바와 HSBC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장기간 관행적으로 저질러 온 불법 공매도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힌 뒤 글로벌 IB 전수조사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히기 전 시점이지만, 메릴린치가 선제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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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공매도 금지 조치에 외국계 자금 이탈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들이 한국 비즈니스를 철수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대부분 글로벌IB들이 국내 시장규제 관련해서 불만을 많이 토로하고 있다. 우회적으로 당국에도 우려 목소리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이 내년 6월까지로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약속했지만, 비즈니스 연속성이 떨어지는 만큼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할 유인 역시 줄어든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왕자병을 고쳐야 한다”는 말마저 나온다. 외국계 자금을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규모가 아닌데도 불구, 규제 리스크까지 불거지며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작 금융당국이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증시에서 이탈한 외인 자금이 일본과 대만 증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이며 홍콩이 금융 허브 지위를 잃어 가는 와중에 대만과 한국 증시가 수혜를 볼 수 있었지만, 공매도 전면금지 규제로 인해 오히려 있던 외국계 자금도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IB 불법공매도 사건 이후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단순한 주문실수로도 형사처벌될 수 있을 듯한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국내 시장보다는 대체할만한 다른 시장으로 자금이 흐를 것이란 동향이 감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